어느 날 구창식(이두일 분)이 아버지와 함께 운영하던 공장이 빚더미에 올라앉고 채권 추심원들이 압류를 강행한다. 별안간 실업자가 된 구창식은 다른 직장을 찾는다. 그런데 밥벌이를 위해 그가 하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채권 추심원이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빚을 지고 자신처럼 위축돼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 중 싱글맘도 있다. 혼자서 애를 키우는 선주(류현경 분)도 구창식의 돈을 받기 위해 쫓아다니다가 만난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점점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
여기까지가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 ‘물좀 주소(홍현기 감독)’의 이야기 주요 뼈대다. 물좀 주소는 IMF 이후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된 실업자와 그들을 지겹도록 따라 다니는 빚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에는 시대의 불행이 담겨 있다. 구창식으로 대표되는 인물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이런 주제의 무게감과 달리 물좀 주소는 제목처럼 다소 경쾌하다. 경쾌하다 못해 발랄하기까지 하다. 채권 추심원이면서 동시에 채무자인 창식이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장면도 마냥 비관적이진 않다. 또 처음에는 그냥 철없는 소녀로 보였지만 홀로 힘들게 아이를 키우는 선주의 모습도 애처롭지만 비관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영화는 사회적 피해자들은 스크린에 불러세우지만 그들을 이용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는다.
한정훈기자 exist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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