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毒을 藥으로 바꾸자] 에필로그

 지난달 5일, 어린이날을 맞이해 KBS 라디오에서는 ‘청소년 게임중독’을 주제로 토론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정신과 전문의와 학부모단체 관계자, 상담 전문가 등 다양한 패널이 나왔다.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놓고 게임업체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이 모색됐다.

 방송 중에 충격적인 말이 나왔다. “그렇다면 게임은 아무런 순기능이 없습니까?”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패널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예, 게임에는 순기능이 전혀 없습니다.”

 충격적인 결론이었다. 이쯤 되면 게임은 문화콘텐츠로서의 자격을 잃게 됐다. 결국 게임은 역기능만 있는 ‘박멸의 대상’으로 정리됐다.

 ◇게임은 문화콘텐츠다=게임에 순기능이 없다면 다른 근본적 문제의식이 나온다. 과연 게임의 순기능은 무엇인가.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는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게임의 순기능은 재미입니다.”

 게임이 문화콘텐츠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모든 문화콘텐츠는 고유의 순기능이 있다. 사람들은 미술작품을 보고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연극을 보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영화는 감동을 준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게임에서 얻는 감정적 변화는 ‘재미’다. 재미를 주면 게임으로서의 기본적 순기능을 갖고 있는 셈이다.

 게임이 적지 않은 역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게임 이용자나 게임 업체 관계자들도 인정한다. 문제는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역기능이 크다고 해서 게임이 가진 문화콘텐츠 가치를 부정하는 시각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게임의 재미는 개인에게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게 만든다. 게임 이용자는 게임 속에서 다른 이용자와 대화하고 협동하며 공동 목표를 이뤄내려 한다. 여기서 게임 이용자는 자연스럽게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아직 게임 문화의 성숙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게임 이용자 사이에 언어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지만 부모나 학교, 나아가 사회적 지도가 선행된다면 게임은 사회화를 배우는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매체로 발전한 게임=최근 게임은 문화콘텐츠에서 매체로 변하고 있다. 재미를 느끼고 몰입성이 강한 특성 때문에 사람들이 게임을 다양한 분야에서 쓰기 시작했다. 이른바 ‘기능성게임’이다. 아직 기능성게임 시장은 맹아기지만 열기는 대단하다. 특히 교육 분야의 기능성게임 도입 시도는 두드러진다.

 지난달 문화부는 서울 우신초등학교에서 기능성게임 전략 발표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온라인게임 ‘군주’를 활용해 사회 수업을 진행하는 사례를 시연했다. 학생들은 온라인게임 속에서 팀을 이뤄 활동하며 스스로 대표를 뽑고 경제 활동도 직접했다. 팀을 대표하는 팀장을 선거로 뽑고 공약을 이행하는지 추적하며 민주사회의 기본원리를 깨쳤다. 아이템을 제작하고 사고파는 미션을 수행하며 시장 원리도 배웠다.

 수업을 진행한 김희진 교사는 “과거에는 게임이 학업을 방해한다는 선입견이 강했는데 실제 게임을 활용해 수업을 진행하니 학업성취를 위한 좋은 도구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비단 교육뿐 아니라 의료나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능성게임을 접목하려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게임이 가진 특성을 잘 살리면 글이나 영상이 내지 못하는 강력한 정보 전달 효과를 낼 수 있다”며 “TV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마녀사냥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게임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열린 마음으로 심도 있는 연구를 시작하자=여기서 새로운 과제가 나온다. 어떻게 하면 게임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고 순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가. 전문가들은 심층 연구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의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게임이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나쁘다는 사실은 아직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며 “의학 분야는 물론이고 사회학이나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게임의 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게임은 이미 청소년과 젊은이들 사이에 떼려야 뗄 수 없는 문화콘텐츠가 됐다. 역기능만을 과대평가해서 게임을 없애자는 주장은 산업혁명 초기 자신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생각으로 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주의자’들과 다름없다.

 재미와 몰입성을 갖고 있는 게임을 이용해 다양한 분야의 활용도를 찾아야 한다. 아울러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연구 활동을 펼쳐 게임의 역기능을 줄여야 한다. 게임을 독에서 약으로 만드는 노력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