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상업적 이윤을 목표로 출간된 소설인 방각본(坊刻本)이 나왔을 때 반발이 심했어요. 지금의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처럼 방각본을 보면 패가 망신한다고 했었죠. 하지만 방각본은 여인들과 아이들의 매체 해독력을 키워준 엄청난 매체였습니다.”
정조 독살설을 바탕으로 조선 당쟁사와 이기론 철학까지 아우른 소설 ‘영원한제국’의 작가로 유명한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43)는 게임을 보는 부정적인 시각은 18세기 방각본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순수문학만을 고집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눈뜬 열린 지식인이다. 이 교수는 ‘리니지2’에 중독돼 치료를 받았을 정도로 누구보다 게임의 중독성과 몰입성을 잘 알고 있고 경험했다. 그는 이후 문화콘텐츠 및 매체로서 게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자신의 전공을 디지털미디어 분야로 바꿨다.
이 교수는 리니지2가 수많은 전쟁영화, 전쟁소설보다도 더 자신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그는 리니지2의 이야기가 나오자 온라인게임 역사상 최고의 명작으로 꼽을 만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만약 방각본을 모두 없앴다면 우리는 현재 아프리카의 문화 수준에밖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TV도 바보상자라고 했는데 영상매체의 영향력은 너무나 컸습니다. 게임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문자나 영상 매체가 아닙니다. 참여자가 선택과 조작으로 상호작용하는 매체입니다.”
그는 게임의 과도한 몰입현상과 부정적 시각은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며 향후 10여년 안에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 시대가 온다는 것.
“교사가 학생을 훈육하는 에듀케이션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학습자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는 러닝의 시대입니다. 청소년은 게임으로 가상의 세계에서 지식을 얻고 문제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를 ‘게이밍 리터러시’라 표현했다. 게임은 경쟁 지향적이며 목적이 있다. 또, 퍼즐을 해결해가는 과정인데 이는 현실 세계의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게임을 그저 기성세대가 하는 골프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이 사업이나 친목을 위해 골프를 합니다. 지금 세대에게 게임은 소셜네트워킹의 도구입니다.”
이 교수는 많은 사람이 ‘게임’과 ‘플레이’를 혼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플레이는 그저 오락적 목적으로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것이며 게임은 경쟁지향적이며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게임은 플레이가 목적이 아닙니다. 게임은 새로운 시대의 자기 훈육 도구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소설과 TV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매체로서 기능을 인정받을 것입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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