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멕시코 동부의 한 도시에서 시작된 신종플루(年新型インフルエンザ)는 미국과 캐나다를 거쳐 현재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일본 내 감염자도 급증했다. 며칠 전부터 아소 다로 일본수상이 TV 광고에 직접 출현해 신종플루에 냉정히 대처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초기의 일본 방역대책은 완벽해 보였다. 일본 방역 당국은 신종플루에 대해 WHO가 발표한 레벨4(세계적 유행의 경계 수준)를 받아들여 지난달 27일 내각총리대신을 본부장으로 한 대책본부를 세웠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나리타·간사이 등 국제공항에 도착한 여객기의 기내 검역에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병원균·해충·마약 등이 일본 국내로 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초기 대책을 일본에서는 ‘미즈기와(水際) 대책’이라고 한다.
◇‘골든위크’ 이후 감염자 급속 확산=일본에서는 일본인이 국내와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5월 초 일주일 정도의 기간을 흔히 ‘골든위크’라고 부른다. 1년 중 출국자 수가 가장 많은 기간이다. 이런 연유로 신종플루 확산을 막기 위한 초기 대응에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일본도 해외여행객이 급증하는 골든위크 기간만큼은 자신하지 못했다.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5월 1일부터 터진 신종플루 의심환자는 계절성 인플루엔자로 판명됐지만 일주일 후인 5월 9일 결국 일본 최초로 신종플루 감염자 3명이 확인됐다. 오사카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6세의 고등학생 2명과 40대의 교사 1명이 캐나다의 국제교류 이벤트에 참가했다가 감염됐다.
당시에는 아직 일본 국내에서의 발병이 아닌 외국에서의 감염이기에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인 16일 해외 출국 경력이 없는 내국민에게서 신종플루 감염사실이 확인됐다. 최근 해외에 출국한 적이 없는 효고현의 고등학생이었다. 해당 학교 인근에서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학생이 추가로 발견됐고 오사카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속속 발표됐다.
감염자는 주말을 지나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5월 18일 아침 뉴스에는 효고현과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역에 신종플루 감염자가 92명으로 증가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신종플루 감염자가 92명으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명을 제외하고 감염경로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 감염 주요대상도 학생에서 일반인으로 확대됐다.
◇어묵 판매 금지·사기 상술 극성=이때부터 다양한 대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효고현의 한 편의점에서는 전 직원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으며 타액에 의한 감염 경로가 의심되는 제품인 어묵 판매가 중단됐다. 일본 프로야구가 펼쳐지는 오사카 구장에서는 공기를 통해 감염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풍선을 사용한 응원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게시됐다.
유명 연예인의 오사카 공연도 무기한 중지됐고 유명 관광지나 박물관 입장도 제한됐다. 고베·오사카와 인근지역 초·중·고교의 임시휴교령도 발표됐다.
감염자 확산을 막기 위한 다양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신종플루가 도쿄까지 진출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5월 20일 저녁 8시 20분, 일본 니혼TV에서는 도쿄에서 첫 감염자가 발생했음을 알리는 내용을 다른 중계방송 중 속보로 내보냈다.
당시 일본 도쿄의대의 한 교수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현재 일본은 감염자가 갑자기 1000명 넘게 발생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도쿄를 중심으로 시뮬레이션했을 때 최악의 경우 1주일에 12만명의 감염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기내에서 검역 활동을 펼치는 미즈기와 정책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신종플루의 잠복기간이 2∼3일에서 최장 일주일임을 감안하면 기내에서 감염자를 발본색원하는 일본의 미즈기와 대책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기내 검역을 중단하고 국내 발생 환자의 치료에 중점을 둔 방법으로의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감염 확산 공포심을 이용한 상술도 기승을 부렸다.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마스크 가격은 20∼30% 올랐음에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현실적으로 신종플루를 막기 위한 방법이 마스크를 쓰거나 손을 잘 씻는 것 밖에는 없는 상황에서 마스크의 유무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검사기관이나 연구소 같은 곳에서나 쓸 법한 전용 기능성 마스크는 개당 1000엔이 넘는 가격에도 평소보다 매출이 몇 배나 증가했다.
신종플루의 치료제가 아직 시판이 안된 상황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것처럼 선전한 한 업체는 미국 당국으로부터 시정 명령을 받았다.
◇신종플루도 국민성 반영=5월 20일 산케이신문에는 신종플루 일본 감염자 수가 많은 이유를 소개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멕시코·캐나다 다음으로 일본의 감염자 수가 많다. 철저한 방역 대책과 간이검사 도구 보급률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일본, 그런데도 중국이나 한국에 비해 감염자가 급증한 이유를 해당 기사는 첫 환자가 고교생이라는 점과 일본인의 국민성에 초점을 맞췄다.
일단 일본에서 신종플루는 현재까지 학생에게서 많이 발견됐다. 국가별 감염자 수의 많고 적음의 차이는 바로 학교에서의 발병 유무와 관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모두 학교에서 감염자가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또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에도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일본인은 인플루엔자 증상이 보이면 의료기관에서 바로 검사를 받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의료제도의 차이 때문에 증상이 심해지지 않는 한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비교적 정직하게(?) 검사를 받은 일본인의 환자수가 많다는 분석이다.
마스크 착용을 둘러싼 뒷 얘기도 적지 않다. 일본에 비해 감염자 수가 월등히 많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마스크 착용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인의 마스크 착용 이유를 내가 다니고 있는 보란티아 일본어 교실 선생님에게서 들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일본인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유별나게 싫어한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유는 혹시나 본인이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바이러스를 남에게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본 내 신형플루 감염자수가 300명을 넘어서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다. 임시 휴교조치를 발표했던 효고현과 오사카는 25일을 기점으로 학교 수업을 재개했다. 세계적인 감염 확산의 공포가 부디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되기를 바란다.
도쿄(일본)=김동운 태터앤미디어 일본 블로거(doggul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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