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게임체인저 CIO라야 한다

2005년 4월 세계적 IT리서치회사인 가트너의 펠로가 이구택 당시 포스코 회장을 만났다. 프로세스혁신(PI) 추진 전략이 무엇이냐는 그의 질문에 이 회장은 의미심장한 답을 했다. “우리에게 CIO는 ‘Chief Innovation Officer’를 뜻한다.” PI 2기 막바지였던 당시 포스코에서 CIO는 정말 최고혁신책임자였다. 확장형 전사적자원관리(ERP) 도입과 제조실행시스템(MES) 구축, 식스시그마 확산까지 CIO는 회사의 DNA를 바꾸는 혁신 전도사였다. 혁신 4기가 태동하는 이 순간에도 포스코 CIO의 가장 큰 고민은 혁신 고도화다. 포스코 CIO들은 임기 후 모두 핵심 보직으로 영전했다.

이후 국내 CIO 위상이 뚜렷이 변했다. CIO가 최고프로세스책임자(CPO)를 겸하거나, 인사 등 지원조직까지 관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부사장, 사장 CIO도 생겨났고, CIO 롤 모델로 언급할 만한 인물도 많아졌다. 반면에 우려할 만한 경향도 있다. 올해 들어 주요 대기업과 금융권에서 CIO 위상이 낮아지거나 CIO 직제를 없앤 사례가 눈에 띈다. 심지어 CIO BIZ?가 최근 실시한 최고재무책임자(CFO)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CIO를 신뢰하지 않는다거나 CIO 직제가 필요 없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처럼 CIO 위상은 양극화로 치달았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해당 기업 CIO가 어떤 성과를 냈는지도 중요하고, CEO의 마인드도 중요하다. 기업이 처한 여러 가지 요인의 복합적인 결과일 수도, 아니면 일시적 편향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혁신활동에서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CEO의 마인드 문제일 수도 있지만 문제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공염불이거나 구두선이다. CIO와 IT부서의 변화 노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진짜 문제는 IT프로젝트 위주의 이벤트성 혁신에 치중하는 현실이다. ‘비즈니스-IT 정렬’이 곧, 신기술 IT프로젝트로 등치되는 현실이 이어진다면, CIO 위상의 양극화는 계속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엔터프라이즈2.0의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프록터앤드갬블(P&G)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2000년대 초반 A G 래플리 CEO는 ‘연구개발(R&D)의 50%를 외부에서 조달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후 P&G는 집단지성과 다양한 협업 네트워크를 활용해 유기적 성장을 거듭했다. 인수합병과 자체 특허기술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는 기존 경영 관행에 비하면 획기적인 변화였다.

당시 필리포 파세리니 P&G CIO의 화두는 두 가지였다. ‘글로벌 R&D 조직(전 세계 28지역, 8000여명)이 마치 한 건물에 있는 것처럼 한다. 광범위하고 복잡한 혁신 활동을 효과적으로 관리한다.’ 그는 오히려 IT비용을 줄이면서 핵심 전략 위주로 IT투자를 집행했다. P&G가 엔터프라이즈2.0의 대표기업으로 평가받지만, 정작 웹2.0 툴을 도입한 것은 한참 뒤인 2007년이었다. 오히려 그때까지 구닥다리 이메일 시스템을 글로벌 협업의 핵심 도구로 잘 활용했다. 대대적인 비즈니스 변화라면, 응당 대규모 IT프로젝트가 이어지는 국내 현실에서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다. 파세리니는 지난해 CIO 겸 글로벌 비즈니스 서비스 담당 사장으로 승진했다.

포스코나 P&G 사례에서 보듯 CIO 위상은 그 기업의 혁신 성과와 직결되곤 한다. 혁신을 주도한 CIO는 업계의 새 롤모델이 된다. 혁신의 성과는 회사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래플리는 지난해 ‘더 게임체인저’라는 책에서 “돈 버는 혁신만이 비즈니스 게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제 CIO도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거듭날 때다.

박서기 전략기획 팀장 겸 CIO BIZ 팀장 sk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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