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IO는 기업의 프로세스를 관장하는,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 같은 존재여야 한다. IT는 이제 어느 기업의 프로세스에서 필요한 도구가 아니라 프로세스 그 자체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IT가 기업 프로세스 자체여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모든 프로세스가 IT로만 이루어지는 자동화가 돼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IT가 새로운 프로세스를 창조하고 기존의 프로세스를 업그레이드하는 전략적 선택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CIO의 역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IT가 단순히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CIO가 있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포인트가 있다. 지난 10여년간 많은 기업이 프로세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자원의 투자가 어떤 부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대부분의 자원 투자가 IT 자원의 확충과 보완에 집중되고 있다는 현상이다. 또 많은 프로세스를 자동화와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컴퓨터가 대체하는 프로세스로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인력이 하는 단순, 반복적 작업들이 컴퓨터가 제어하고 실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저렴하며 에러의 확률도 낮다는 것을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년 전 은행창구에서 하는 업무들이 요즘은 ATM이나 CD기로 대체되고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자동화기기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더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창구 직원의 수를 현격하게 줄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기업 내의 모든 프로세스에서 쉽게 알 수 있는 보편적인 진화의 과정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CIO의 역할이 단순히 IT프로젝트(현업이 요청하는 일) 기획과 자원관리의 역할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프로세스 혁신을 이끌어내는 전략가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이다.
CIO가 프로세스 혁신에서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와 같은 역할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물론, CEO나 CFO의 깊은 신뢰, 회사 전체에서의 절대적 공감 확보 등 기업 전체적 관점에서의 지원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한국기업들과 여러 CIO를 관찰해 본 결과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기업들의 CIO는 전략가형이라기보다는 업무 집행형 CIO가 많다는 점이다. 업무 집행형 CIO가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와 능력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는 뜻이다. 이는 주어진 일을 예산과 자원하에서 충실히 수행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있으나 위에서 언급한 프로세스 혁신의 목적, 마에스트로의 역할에는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는 지휘자가 악보에 그려진 대로 충실히 음악을 연주하는 것 외에 다양한 실험과 아이디어를 가미해 다른 오케스트라와 차별화되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지휘자를 기대한다. 기업 활동의 불루오션의 전략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만들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전략적 마인드의 CIO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첫째는 CIO 자신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린 마음, 도전정신이 있어야겠다. ‘지금 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 것을 왜 고민해야 하나’ 하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더 쉽고 빠르고 싸게 할 수 있는, 그리고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끝없이 찾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창의적이고 때로는 엉뚱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진 직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혁신은 그런 엉뚱하고 뜻밖의 생각에서 시작될 수 있다.
둘째는 CIO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IT 세계는 그 다른 무엇에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만약 어느 CIO가 자신이 제일 익숙하고 오래 경험해 왔던 기술만을 고집한다면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모든 새로운 기술의 추이를 이해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 핵심적 내용에 관해 나름대로 정리가 돼야 한다.
많은 저널을 읽고 항상 새로운 기술에 관해 벤더들과 다른 기업의 사용자들과 접촉하고 대화하며 관련된 블로그에 오르는 의견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셋째는, 기업 내의 다른 임원들과 폭넓은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가야 한다. 회사 내에서 영업을 포함한 다른 임원들이 그들의 고민과 이슈를 상담하고 싶은 사람이 CIO라면 그 회사는 밝은 미래가 있을 것 같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프로세스 개혁은 IT 그 자체의 역할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업을 이해하고 현업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하기 위해서는 CIO와 IT조직이 전략적 방향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소극적 자세보다는 문제를 만들어서라도 변화를 이루겠다는 적극적 자세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기업에서의 IT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같다. 훌륭한 음악도 끊임없이 새롭게 창조된다. 베네수엘라의 젊은 천재 지휘자인 구스타보 두다멜이 그의 청소년 오케스트라, 시몬 볼리바르를 지휘할 때 느낀 감흥은 바로 이런 혁신적인 리더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했다. 우리 기업들의 CIO들도 이렇게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며 전략적 사고의 진정한 비즈니스 리더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정태 삼성증권 고문 eric.j.kim@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