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이다. 인터넷 붐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미국의 한 유명 인사가 한국을 방문하곤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다. “한국의 주민번호제는 정보화를 10년 앞당길 수 있는 좋은 무기입니다.” 사실 그랬다. 국민 개개인의 모든 정보를 일련의 코드 하나로 손쉽게 식별할 수 있는 장치로는 주민번호제만 한 것이 없다. 정보화 비용 측면에서 보면 가장 효율적인 장치다. 미국은 사회보장번호나 운전면허번호 같은 게 있지만 그 용도가 우리의 주민번호에 비해 제한적이다. 당시 인터넷업계는 가짜 인터넷 회원 수 문제로 골치를 앓을 때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이때부터 주민번호를 이용한 실명회원 모집 경쟁이 벌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 업계는 실명회원 수를 밑천으로 번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주민번호제는 뜨거운 감자가 돼 되돌아왔다. 마구잡이로 수집했던 주민번호들이 여기저기에서 유출되기 시작했다. 주민번호를 대체할 수 있는 아이핀 같은 대안이 나오기는 했지만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워낙 뿌리 깊고 광범위하게 쓰이는 주민번호가 쉽게 대체될 리 만무하다. 개인정보유출로 인한 피해와 사회적 파장은 초기 정보화 비용의 경제성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지난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었다. 발전회사들이 가격이 맞지 않다고 판매사들에 전력 공급을 중단했던 것이다. 이에 앞서 미 정부는 전력시장을 효율화하기 위해 발전과 판매 시장을 분리시키는 등 규제를 완화해 독과점 시장에 경쟁을 도입했다. 그 후유증인 셈이었다.
당시 독점 공기업 한전 민영화를 한창 진행하던 우리나라는 발칵 뒤집혔다. 발전과 송배전 분리 등 시장 개방을 골자로 하는 한전 민영화에 대한 우려가 이웃나라에서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결국 한전 민영화는 발전자회사를 자회사로 떼어내고 전력거래소를 만드는 선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안도했다.
수년이 흐른 지금, 유가급등과 녹색성장이라는 변수를 맞아 상황은 다시 반전되고 있다. 한전은 작년 3조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전기요금 현실화는 발등의 불이다. 한전이 어마어마한 적자를 안고 가도록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적으로도 저렴한 국내 전기요금이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국영화 덕이라는 얘기는 이제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 한전은 그린에너지 확보에도 적극적이기 힘들다. 발전과 판매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한전으로서는 그린에너지 공급원 확보나 판매처 개척에 급할 게 없다. 미국 전력회사들의 발빠른 움직임과 대조적이다. PG&E, SCE 등 미국 전력회사들은 차별적인 서비스와 보상책을 내세워가며 그린에너지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 전력회사들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그린에너지 시장 선점 노력이 처절할 정도로 묻어난다. 이들에게 그린에너지는 저렴하고 안정적인 공급원 확보는 물론이고 신규판로 개척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이로 인식되고 있다.
한전이 전기요금 인상을 들고 나왔다. 전기요금은 국민 생활은 물론이고 산업경쟁력과 직결돼 있다. 그래서 전기요금 인상은 언제나 정부와 정치권에 뜨거운 감자다. 더욱이 자칫 속불만 남아 있는 한전 민영화 논쟁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기요금 인상을 내세우기 전에 한전 스스로 전기요금을 낮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답해야 한다. 지금 전 세계가 그린에너지개발을 위해, 또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기요금을 낮추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한전도 마찬가지다. 그래야만 전기요금 인상이 단순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 규모를 국민의 돈으로 채우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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