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에서 192명이 생명을 잃고 148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2002년 태풍 루사 등 연이은 대규모 자연 재해로 시작된 통합 무선통신망 구축 필요성이 이 사건을 계기로 더욱 강하게 제기됐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재난 발생 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가 기관 간 무선통신망 통합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됐고, 정보통신부 및 산하 관련 기구 12개 기구가 모여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이 같은 논의의 결과로 ‘국가통합지휘무선통신망(이하 국가통합망)’ 사업계획이 진행됐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현재 국가통합망 구축사업은 중단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
지난 18일 대구지하철 참사 6주기를 맞아 아직도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국가통합망 구축사업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사회(박승정 전자신문 정보미디어부장)=재난의 특성은 언제, 어느 때 발생할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좀더 효율적으로 재난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통합망 사업이 진행됐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사업진행이 중단된 상황이다. 현 시점에서 국가통합망 사업의 현황을 짚어보고, 현실적 대안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우선 국가통합망 구축 필요성과 해외 사례를 살펴보자.
◇김남(충북대학교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현대사에서 비극적인 대구 참사가 발생했고 나중에 뒤돌아보니 많은 것이 미흡해 재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중에 통신문제가 있었고 그 대안으로 통합지휘무선망이 등장했다.
OECD 선진국이나 심지어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도 통합망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망을 어떻게 구성해서 운영하고 있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김사혁(정보통신정책연구원 미래융합전략연구실 책임연구원)=영국이 2005년, 핀란드가 2002년, 네덜란드가 2004년 망을 구축했고 현재 독일·스웨덴·노르웨이가 전국 규모의 망을 구축하고 있다. 통합망 구축은 세계적인 추세다.
◇김응배(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대구지하철 참사는 이동통신 강국 대한민국에서 종합적인 열차 무선통신망이 미흡해 벌어진 참사였다. 국보 1호인 숭례문 전소사건 역시 통합망이 조기진화에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발생했다. 통합망이 원활히 운용됐더라면 전소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박정훈(인천전문대학 정보통신과 교수)=당위성은 충분하다. 오늘날 재난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로 크게 발생한다. 이전의 방법으로 피해를 예측하고 대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회=국가통합망 구축의 당위성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것 같다. 그럼 기존 국가통합망 사업의 경제성을 논의해 보자.
◇김사혁=경제성을 논의하기 이전에 반드시 알고 넘어갈 부분은 통합망이 아니더라도 이미 UHF, VHF, TRS 등 다양한 형태로 무선통신망 투자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통합망 사업을 중단하면 마치 돈이 하나도 안 들어 갈 것처럼 생각하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서울·경기 등은 이미 자가무선통신망을 구축했고 계속 유지비가 들어가고 있다.
10년을 기준으로 기존 형태를 유지하면 8600억원, 통합망 구축에는 9100억원이 소요된다. 효율성을 배제한 비용 측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논란이 됐던 지하구간 투자비는 비용 추산이 잘못됐고, 경쟁 미도입에 따른 비용 발생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김남=통합망은 여러 기관에서 같이 쓰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이 망을 구축하지 않으면 각 기관에서 자기망을 구축할 수 밖에 없다. 경찰·소방·산림·국방·응급구조 등 자가망이 필요한 각 정부부처나 기관이 1000개가 넘는다. 국가통합망 자체는 훨씬 효율적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특히 통합망에 몇 조원이 들어갔고, 향후 수조원이 더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현재 통합망에는 300억원밖에 투자가 안 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국가통합망 사업에는 항상 단일 기업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요하다면 불가피성을 포함해서 이야기를 진행하자.
◇김남=현재 국가통합망 사업 중단 원인은 단일 외산 장비에의 종속 논란에서 시작됐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사업을 하는 데 문제가 될 것이다. 단말기는 상징적이지만 유니모 등 국내 업체도 장비를 개발, 공급하는 등 문제를 풀었다.
시스템 부문은 현실적으로 외산장비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대안은 외산장비 간 경쟁을 붙여서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김응배=현재 테트라 시스템의 기능을 100% 활용하려면 단일 시스템을 사용해야 한다. 향후 5년 후에 기술적인 개발이 뒤따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A업체 것을 깔았으면 A업체, B업체 것을 깔았으면 B업체로 갈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업체의 독점에 대한 거론은 기술적인 측면을 이해하지 못해 일어나는 일이다.
◇박정훈=현 시점에서 국가통합망에 들어갈 테트라 시스템을 국산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경제성도 없다.
오히려 우리가 통신에서 수출을 많이 하는 것은 단말기다. 테트라도 아마도 일찍 관심을 가졌다면 독자개발도 가능했을 텐데 시기를 놓쳤다. 경쟁력이 있는 단말기 부문을 정책적으로 키워 시스템 업체 의존 문제를 상쇄하는 현실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김사혁=국산화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장비 도입에는 반드시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교환기, 라우터 등 독점 피해를 많이 경험했다. 이를 해결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시스템의 도입의 주도권을 정부가 쥐는지 공급업체가 쥐는지가 관건이다.독점 지위를 부여해 공급업체가 주도권을 갖는다면 무수한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다.
다양한 국가에서 연동을 위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통합망 구축 운영 시점에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사회: 독점은 후에 많은 피해는 고려할 부분이지만, 현실적 대안이 적다는 측면에서 향후 숙제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통합망 사업을 진행할 때 감안해야 할 부문을 이야기해 보자.
◇김응배=독점 문제가 제기되는 테트라 교환기가 전체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15%다. 나머지는 국내 통신공사업체, 단말기업체 등의 몫이다. 10∼15%에 흔들리기보다는 빨리 국가통합망을 구축, 신속한 재난 대응체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추경에서라도 반드시 예산이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김사혁=올해 사업진행이 어렵다면 다양한 측면을 꼼꼼하게 따져 2010년부터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외국도 보통 구축에 5∼6년이 걸렸다. 지금 진행해도 늦지 않다.
단 해양경찰 등 해안선과 관련된 투자 부문이 빠져 있는게 아쉽다. 또, 무선통신망 사업 경험이 많은 민간운용 등 현실적인 대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김남=이 모든 이슈를 심도 있게 연구, 고민하는 데가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다양하게 투자해야 할 많은 부문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 포기할 것인지, 계속 진행할 것인지 정부는 정책적 판단을 빨리 했으면 좋겠다.
또 망만 깔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버렸으면 한다. 구축한 망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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