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한국식 부자관이 적나라하게 노출돼 있기도 하지만, 쓸 때는 정승처럼 품행이 방정해야 한다는 소비 철학도 녹아 있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2009년 국내 10대 트렌드’ 내용을 보면 10개 항목 중 아홉 번째로 소개된 주제가 ‘가치와 신뢰가 중시되는 소비패턴 확산’이다. 더불어 가격 대비 품질(기능)과 같은 ‘경제적 가치’를 더욱 중시하는 소비패턴이 정착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해 IT 가전제품 중 히트제품으로 떠오른 소형 노트북의 일종인 ‘넷북’은 고객별 니즈와 취향을 고려해 불필요한 기능은 없애고, 핵심기능만 녹여 기존 노트북 대비 절반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시대 대표적인 ‘가치소비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가족 중심의 소비도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제일기획이 20세에서 49세에 이르는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2008 불황기 소비자 인식조사 발표자료’에 따르면 ‘개인소비에 부담을 느낀다’는 소비자의 대다수가 ‘가족을 위한 소비(75%)와 자녀를 위한 소비(80%)는 유지하겠다’고 응답했다. 소비 트렌드가 개인보다 가족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격은 비싸지만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는 지갑을 열겠다는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가족의 가치가 그만큼 커진 셈이다.
소비자는 가격을 떠나 한 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중시 소비’ 패턴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소비자의 가치소비 트렌드에 맞춘 합리적 가격 정책으로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불황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환 대진디엠피 차장 tan313@daejind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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