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인도 새티암 회계부정 사건 발생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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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전 인도기업 사상 최대의 사건인 새티암(Satyam Computer) 회계 부정 사건이 터졌을 때 인도 전역은 발칵 뒤집혔다.

 인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언론들도 이를 ‘인도판 엔론 사건’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엔론은 미국 유수의 에너지 기업으로 지난 2001년 대규모 회계 부정 사건을 저질러 파산한 기업이다.

 인도 4위 정보기술(IT) 업체인 새티암의 라말링가 라주 회장은 이사회에 제출한 편지에서 “지난해 9월 말 현재 새티암 장부에 적혀 있는 자산 536억루피(약 15조5000억원) 가운데 94%는 부풀려진 돈”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또 “원래 3%였던 분기 영업이익을 24%로 높여 보고하는 등 지난 몇 년간 회사의 회계를 조작했다”고 실토했다. 이후 그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사퇴했으며,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새티암 회계 부정 사건, 충격과 공포=이 사태에 많은 인도 사람은 충격과 함께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새티암과 라주 회장은 그간 인도인에게 인도 IT 산업의 빛나는 성공 신화였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접한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새티암과 라주 회장이 결코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수년 전 나는 기자의 신분으로 새티암과 라주 회장을 현지 집중 취재한 경험이 있다. 새티암은 인도 중남부 대도시인 하이데라바드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하이데라바드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에 이어 인도 제2의 기술도시로 통한다. 하이데라바드가 이런 명성을 얻은 이유도 새티암이 바로 이 도시에 있어서다.

 새티암 본사를 방문해 본 사람들은 99만1740㎡(30만평)가 넘는 방대한 캠퍼스(사옥)와 최신 시설에 놀란다. 웬만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보다 더 멋지게 꾸며져 있고, 시설도 최첨단이다. 이 회사 캠퍼스에는 9홀 골프장과 작은 동물원 등 각종 스포츠 레저 시설이 잘 구비돼 있을 뿐만 아니라, 수년 전에 이미 사내 건물 밖에서도 무선랜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최첨단이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모하마드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 등 이 회사를 다녀간 세계적 거물도 아주 많았다.

 새티암은 라주 회장이 1987년 설립한 IT 서비스 회사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인도 안드라 로욜라 대학과 미국 하버드대, 오하이오 대학에서 수학한 라주 회장은 한때 건설과 섬유 관련 사업을 했다. 그러나 인도가 컴퓨터 소프트웨어 서비스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고 판단한 후 새티암을 창업했다.

 창업 이후 새티암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30∼40%의 놀랄 만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창업 당시 20명이었던 직원 수는 현재 6만명을 웃돈다. 글로벌 고객사도 600개에 이른다. 이 중 다수는 ‘포천 500대 기업’에 포함된 세계 저명 기업이다. 이에 따라 새티암은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대 IT 기업’에 드는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IT 서비스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이번 회계 부정 사건도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여전히 고성장하고 있음을 ‘위장’하다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 라주 회장을 개인적 탐욕에 따른 부도덕한 인물로 비난하지만 나는 이런 시각에 반대한다. 라주 회장은 인도 사회에서 매우 존경받던 인물이다. 기부와 장학사업을 비롯해 수백만달러를 들여 정부 대신 시민 재난대책센터를 운영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철저했던 기업인이다. 그 자신도 회계 부정을 고백하면서 “단돈 1루피도 챙기지 않았다. 법의 판단에 맡기겠다”며 책임지는 자세를 나타냈다.

 ◇새티암, 왜 회계 부정의 덫에 걸렸을까=새티암의 회계 부정은 인도 IT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원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 초창기 인도 IT 기업의 수익률이 높자 신생 IT 기업이 너도나도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경쟁자가 급증하면서 시장은 포화상태가 됐다. 당연히 외국 기업들로부터 수주받기가 힘들어졌다. 수주를 받기 위해 인도 IT 기업은 경쟁적으로 수주 가격을 낮췄다.

 반면에 인도 IT 인력의 고용 비용은 크게 올라 기업의 채산성은 갈수록 악화됐다. 감원을 통해 고용 비용을 줄여야 하지만 인도 노동법은 직원을 해고하기 매우 어렵게 돼 있다. 따라서 기업 측에서는 주가를 관리하고 더 많은 수주를 따내기 위해 실적 부풀리기나 회계 조작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새티암은 이런 유혹에 굴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보인다.

 대규모 회계 부정 사건이 새티암만으로 그칠 것이라고 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인도 기업은 가족 중심 경영을 하고 있다. 친인척들이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해 기업 투명성이 낮고 지배 구조가 부실한 편이다. 게다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인도 IT 기업의 경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인도 기업에서 유사한 회계 부정 사건이 재발할 것이란 일각의 전망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 이 경우 인도 IT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몰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인도 정부·기업, 투명성 강화 계기로=‘새티암 게이트’ 발생 초기에 가졌던 충격과 공포는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난 요즘 진정되는 분위기다. 기업 지배 구조에 대한 인도법이 잘 정비돼 있는 편이고, 감독 당국이 이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엄정하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도 이 사건이 새티암에 한정된 일회성 사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또 새티암 회계 부정이 인도에서 발생한 ‘후진국형 사건’으로 보려는 시각에 반대한다. 미국에서 발생한 거대한 엔론 회계 부정 사건을 예로 들며 어느 나라든 가능성이 있는 일반적 사건임을 역설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 초대형 규모의 대우그룹 회계 부정 사건을 경험한 바 있다.

 새티암 게이트를 예외적, 일회적 사건으로 간주하려는 인도 정부의 노력은 이해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인도 기업의 지배 구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이나 IT 기업의 상황은 좀 다르다. 이들은 주로 외국 기업을 상대하기 때문에 서구 기업에 버금가는 우수한 지배체제를 갖추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인도 대표 IT 기업인 타타컨설턴시서비스(TCS)나 인포시스, 위프로 등의 기업 지배 구조는 상당히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인도 IT의 자존심’인 인포시스나 타타그룹의 자회사인 TCS는 세계 최고의 기업 지배 구조를 자랑하고 있고, 인도 IT 기업 순위 3위인 위프로도 신뢰 경영으로 유명하다. 일부 언론에서 다음 위기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진원지로 위프로를 지목하고 있으나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새티암 사건 후 위프로 측에서는 기업 투명성과 지배 구조 차원에서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으며, 새티암 사건으로 인해 사업상 별 타격을 받고 있지 않다고 최근 밝히기도 했다.

 위기의 당사자인 새티암도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새티암은 지난 1월 한 달간 새로 확보한 수주가 15건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사태로 인해 거래를 취소한 기업은 오직 한 군데에 불과했다. 또 기존 고객사들의 90% 이상이 앞으로도 새티암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대규모 회계 부정 사건에도 불구하고 새티암에 대한 고객사의 믿음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대부분 고객이 거래를 취소했던 미국 엔론 사태 때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고 새티암 사태의 후폭풍이 완전히 가라앉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새티암 인수자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제2의 새티암 사태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현시점에서 중요한 사실은 인도 정부와 기업들이 새티암 사건을 계기로 보다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고 우수한 지배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인도 정부가 추구하는 ‘놀라운 인도(incredible India)’로의 변신에 성공할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적극 전환하는 태도, 이것은 인도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절실한 과제다.

 오화석 인도 네루대학교 국제학부 객원교수 hwaseoko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