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맞은 美 지역방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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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러코스터를 타고 바닥으로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미 라스베이거스의 NBC 계열 지역TV 방송사인 KVBC의 리사 하우필드 이사는 최근 수치에 민감하다. 시청률은 지난해보다 7.7% 떨어졌고 올해 광고 매출은 30%나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달에는 인력 6%를 잘라냈다.

 ‘슈퍼볼’과 ‘오프라 윈프리쇼’를 미국 전역 구석구석에 내보내면서 말 그대로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 본연의 임무를 다했던 미 지역TV방송사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디지털 전환과 유료방송 등 급변하는 방송 환경 속에서 위기를 맞이한 지역TV 방송사들의 현실과 생존 전략을 엿봤다.

 ◇과거의 영화는 어디에=지난 반세기 동안 미 지역방송사들은 인기 토크쇼부터 드라마, 슈퍼볼과 같은 스포츠 경기, 지역 뉴스 등을 미국 전역에 방송하면서 거대 방송사들에게도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지난 1970년대 지역 방송사들의 평균 영업이익은 50%를 넘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역방송사에게 적지않은 프로그램 송출료를 지불했다.

 그러나 유료방송인 케이블TV의 등장으로 사정은 달라졌다. 케이블 등장 초기만 해도 지역 방송사들이 방영하는 인기 프로그램을 동시에 케이블에 제공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1993년경부터 이같은 원칙은 깨졌다.

 ABC와 폭스 등이 케이블 채널을 매입하거나 직접 런칭하면서 상황은 점점 어려워졌다. 2000년 전체 TV 광고 매출의 34%를 유치했던 지역 방송사들은 2007년 26%만을 끌어모으는데 그쳤다.

 올해 지역 방송사들은 디지털 TV 전환을 앞두고 또 한번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방위 압박받는 지역 방송사=특히 최근 경기 침체로 TV 광고 시장이 위축되면서 지역 방송사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미 대다수 지역TV 방송사들은 자체 제작 프로그램 비중을 줄이고 인력 구조조정에도 착수했다.

최근 렉싱턴과 야키마 지역의 방송사들은 결국 지역 뉴스를 폐지했다.

 번스타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미 전체 TV 방송국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최대 30%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ABC를 소유한 월트디즈니의 영업이익은 60%나 급감했다. ABC 계열 지역방송사들의 매출이 15% 감소한 것이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주 뉴스코퍼레이션은 폭스를 비롯한 계열 지역 TV방송사들이 1년내 대대적인 비용 절감 방안을 마련,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6월 끝나는 올 회계년도 하반기 뉴스코퍼레이션 계열사들의 광고 매출도 3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설상가상으로 CBS와 같은 거대 방송사들이 프로그램을 지역 방송사 대신 케이블TV에 직접 제공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광고 수익 대신 케이블TV 수신료를 나눠 갖겠다는 속셈이다.

 ◇기회는 남아 있다=하지만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지역 방송사들의 근간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아무리 환경이 변해도 넓은 지역에 가장 효과적으로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수단으로 지역방송사만한 게 없다는 것.

 슈퍼볼과 같은 빅리그의 송출 계약시 지역 방송사들을 통해 이를 내보내는 것이 여전히 핵심 조건이다.

 지역 방송사들도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다. 몇몇 방송사들이 지역 방송을 휴대폰을 비롯한 이동기기에서 볼 수 있는 기술을 테스트하고 있다. 텍사스의 넥스타브로드캐스팅그룹은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도 오픈했다.

 NBC유니버셜 계열 방송사들은 슈퍼마켓과 택시 등에 설치된 TV 화면과 홈페이지를 통해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보다 안정적인 수입원으로 케이블TV사업자들로부터 지역방송 재송신 수수료를 받아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NBC 지역방송사들을 총괄 운영하는 NBC로컬미디어의 존 월리스 사장은 “지역 방송사들이 생존을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할 시기”라면서 “여전히 지역 방송사를 위한 틈새 시장은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