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만화]이우영 화백의 ‘아기공룡 둘리’

Photo Image

 이미 서른이 넘은 사람이라도 둘리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린 시절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둘리를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설렌 기억이 있을 것이다.

 ‘검정 고무신’의 이우영 작가(37)는 둘리의 귀환 소식에 누구보다 설렜다.

 초등학교 4, 5학년 때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된 ‘아기공룡 둘리’는 그가 만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고, 둘리를 창작한 김수정 화백은 그의 역할모델이기 때문이다.

 “둘리는 만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준 작품입니다. 둘리 캐릭터를 따라 그리며 습작하다 나중에 내 캐릭터를 만들고 그랬어요.”

 그 시절 그 또래 누구나 그랬듯 이우영 작가 역시 둘리 캐릭터가 들어간 학용품과 혀를 내밀고 있는 초록색 둘리 인형이 있었다.

 그는 “처음 접해보는 동물이 주인공인 게 신선했고, 너무 착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엉뚱한 점이 다른 캐릭터와 달랐다”며 둘리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를 꼽았다. 지금도 이우영 작가가 가장 재미있게 기억하는 에피소드는 둘리·또치·마이콜이 ‘핵폭탄과 유도탄’을 결성해 노래자랑에 나간 사건이다.

 이 작가는 “강도가 나타나 다들 우왕좌왕하는데 마이콜이 기타 한 방으로 때려잡는 장면을 보고 이불 속에서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고 떠올렸다. 어린 시절 그저 배꼽 잡고 웃던 장면이, 이후 그가 만화를 공부할 때는 새롭게 다가왔다.

 “거기에 쓴 게 ‘생략기법’이라고 전체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고 사건과 결말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어떤 일이 일어났겠구나 상상하게 해주는 장면인데, 그 부분이 그랬어요. 둘리 곳곳에는 교본과도 같은 역할을 장면이 많았죠.”

 재미와 동시에 보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요소가 녹아 있는 점은 이 작가가 둘리를 대단한 작품이라고 여기는 이유다. 이우영 작가는 둘리가 집에서 쫓겨나자 희동이가 둘리를 찾아 울며 이곳저곳을 다니는 장면에서 가장 가슴이 찡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연출은 학습하는 것보다 잠재된 감성에서 우러나온다”며 “김수정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는 장면 같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된 후 자신의 작품 ‘검정 고무신’을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 위해 팬이자 후배의 위치에서 만난 김수정 화백의 이미지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창작 의욕이 넘쳤다.

 이우영 작가와 김수정 화백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원작 만화가 KBS에서 애니메이션이 됐고, TV애니메이션의 감독이 동일한 인물이다.

 이 작가의 큰아들은 올해로 초등학교 4학년이 된다. 그가 처음 이불 밑에서 킥킥거리며 둘리를 봤던 나이가 된 셈이다. 하지만 오후 4시라는 방영시간 때문에 그의 아들은 둘리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이우영 작가는 “둘리처럼 의미 있는 작품을 다시 할 때 정부지원이 불가능했던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며 “황금 시간대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시간에라도 하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