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미국 뉴올리언스 건설 회사로 첫 출근길에 나선 줄리아 오토(43)는 반갑지 않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해고 명령이었다. 그리고 두달 후, 그녀는 이력서를 쓰거나 집안일을 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보낸다. 한달 7달러면 불안한 현실을 잠시 잊고 게임에 빠질 수 있다.
불황으로 인한 대량 해고 사태 이후 미국인들이 온라인에 접속하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용 행태도 다양해졌다. 게임이나 영화 등 놀거리를 찾는 이들이 급증했지만 블로그·온라인 커뮤니티를 개설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도 적지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블로그와 트위터의 시대에 실업자들이 인터넷에 빠져드는 이유를 들여다봤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최근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발표한 몇몇 수치들은 감원 쓰나미로 인해 인터넷 업계가 기대 이상의 수혜자가 됐음을 설명해 준다. 특히 정리해고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지난해 11월부터 온라인 게임 사이트 등의 트래픽이 치솟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컴스코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미 온라인 게임 사이트 방문자 수는 29.9% 늘어났다. 전년 동기에 0.3%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통상 연말이면 트래픽이 줄어드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 트래픽도 28.6%나 급증했다.
어드벤처 퍼즐 게임인 ‘미스테리케이스파일’ 공급사인 ‘빅피시게임즈’의 매출은 지난해 70% 늘어난 8500만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이 회사의 매출은 창업 7년만에 최대치를 경신했고 1월 회원수도 지난해 9월보다 110% 늘었다.
연예계 소식을 들려주는 유명 블로그 ‘페레즈힐튼닷컴’도 1월 트래픽이 사상 최대였다고 발표했다. 운영자인 페레즈힐튼은 블로그에서 “경제 사정이 안 좋을수록 페레즈힐튼의 인기는 뜨거워진다”고 말했다.
온라인 영화 대여 서비스인 넷플릭스 역시 지난해 연말 회원수가 26%나 늘어났다고 밝혔다.
◇SNS·블로그로 인간관계 지속=지난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대다수 실업자들은 극장에서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면서 소일했다. 이제는 인터넷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은 단순히 마음의 위안을 주는 도구를 넘어서 자칫 단절되기 쉬운 인간관계 유지와 구직을 위한 든든한 네트워크 역할도 맡게 됐다.
건물 관리 서비스직에 종사했던 모니카 로스 윌리엄스(38)는 지난해 해고당한 이후 사회관계사이트인 ‘링크드인’에 가입했다.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서다. 10월에는 페이스북에도 계정을 만들어 소규모 창업을 위한 온라인 포럼을 운영하면서 인간 관계를 넓혀가고 있다.
IBM 컨설턴트 출신인 래리 호우스(47)는 지난해 11월 실직 이후에도 개인 블로그를 개설, IBM 동료들과 온라인에서 만난다.
트위터를 통해 하루에 137명에게 10개 가량의 글을 전송한다.
카네기멜론대학의 로버트 크라우트 사회심리학 박사는 “9·11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많은 이들이 정보 교환과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발길을 돌렸다”면서 “이와 유사하게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한 이들이 인터넷 토론 그룹과 블로그, 커뮤니티에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길을 찾다=전문가들은 대량 해고가 이어지면서 당분간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호황과 블로그 등 온라인 커뮤니티의 상승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미디어자원센터의 게리 핸드먼 국장은 “온라인 엔터테인먼트는 선택의 폭이 넓은데다 가격도 저렴하다”며 “실업자들은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카네기멜론대학의 크라우트 박사도 “온라인에 접속했을 때 사람들은 끔찍한 현실로부터 도피해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다”며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우울한 생각도 떨쳐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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