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만화­] 이희재 화백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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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가 지망생 딸을 둔 아버지. 한국 리얼리즘 만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간판스타’를 출간한 50대 후반의 작가가 컴퓨터 화면을 스크롤하며 코끝이 빨개지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특히 그가 응시하고 있는 것이 까마득한 후배 만화가의 작품이라면 말이다.

 지난 19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자택에서 만난 이희재 화백(57)은 “3분의 1쯤 연재했을 때였는데, 괜찮다 싶어 처음부터 보니까 어느 날은 콧등이 시큰해지고 만날 기다려지더라고요”라며 30년 후배인 강풀 작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얼마나 몰입했는지 말을 꺼냈다.

 그는 “대다수 웹카툰(인터넷의 특성에 맞게 짜인 만화)이 짧고 단발적이면서 외피에 와닿는데 강풀의 작품은 심장으로 온다”며 칭찬했다.

 이 화백의 서재에 꽂혀 있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단행본이 후배 작가를 향한 애정과 작품에 대한 감동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희재 화백이 꼽은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미덕은 ‘인간을 정화하는 울림을 주는 것’. 이 화백은 “사람들이 자기 존재를 잃고 질주하다보면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찾기가 어려운데 강풀은 만화를 통해서 사람들을 울게 하고, 자기정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처음 강풀 작가가 노인들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을 연재한다고 했을 때 이희재 화백 역시 동료작가나 네티즌과 마찬가지로 “실수한 것 아닐까” 하는 우려를 했다고 한다.

 웹카툰의 독자 대부분이 10·20대인데 아무리 로맨스라 하더라도 노인들의 이야기라 고리타분하고 얼토당토 안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화백은 “강풀은 그것을 엎어치기했다”며 “내용이 진진하고, 밀도 있으니 도리 없이 독자는 사랑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가 작품을 하다보면 이야기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작품 속 인물에 이끌려 자기도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이야기를 다루게 되는데 강풀이 그 지점에 다다랐다”고 풀이했다.

 이희재 화백은 강풀 작가가 웹툰 연재를 시작하던 시기에 “그림이 이야기에 비해 미약한 부분이 있다”는 고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면서 “엄밀하게 보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연출도 정교하고 비약적인 진화를 하고 있다”며 “물이 올랐다”고 평했다.

 이 화백이 꼽은 가장 명장면은 ‘29화 인생편’에서 주인공 ‘만석’이 달을 향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는 부분이다.

 이 화백은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실버 세대를 위한 만화 창작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했다.

 “우리도 이제 실버 세대가 많은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데, 그들을 위한 작품은 없어요. 일본에서는 이미 실버 세대만을 위한 만화들이 꽤 나오고 있는데, 이 작품은 다층적인 대중을 공략한 만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고 생각합니다.”

 이희재 화백에게 강풀 작가는 ‘만화 집안의 보물 덩어리’다. 인터넷에 최적화한 웹카툰이란 장르를 열었고, 만화 원작의 가치를 높여서 뿐만이 아니다. 커다란 덩치로 자신의 무게를 누르고, 이야기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강풀 작가는 다음이 더 기대되는 작가기 때문이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이희재 화백은…>

 1980년대 초반 ‘악동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로 당시 어린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연재했다. 이후 사회계층 문제를 다룬 ‘간판스타’를 내놓고 진보적 성향의 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만화가 갖고 있는 고유영역을 활용하는 만화가 좋은 만화’라는 지론으로 소설가 이문열과 삼국지를 만화로 출간했다. 역사만화를 준비하는 틈틈이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위원회 집행위원장이란 중책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2007년 4월부터 9월까지 30회로 연재된 강풀의 순정만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한국사회에서 소외된 노인들의 사랑을 다뤄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에게까지 사랑을 받았다.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대학로 더굿 씨어터에서 3월 1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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