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드 고딘은 ‘안전한 길이 위험한 길이며, 위험한 길이 안전하다(Being safe is risky, and being risky is safe)’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이때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자면 경제위기 타개에 올인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요즈음 불거진 남북 간 경색은 남북교류 협력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러한 남북 갈등에 남남 갈등을 부채질하는 일도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에 포함된 대북정책 기조를 보면 이념 논리보다 경제 논리를 우선으로 해 남북관계를 생산적으로 발전시키며, 북한이 비핵국이 돼 국제사회 일원이 되면 10년 안에 주민소득 3000달러를 달성하도록 협조하겠다는 것이다. 또 2007년 11월 전경련회관에서 발표한 IT 관련 공약 중에는 남북한 한민족 사이버 공동체를 구축하고 북한의 인프라 지원 및 기반을 확충하며, 전자상거래 추진 등 남북 IT 협력 활성화와 인력 교류가 포함돼 있다. 이와 같이 현 정부는 7000만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해 남북의 정치지도자가 함께 통일의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필요 시 남북 정상이 언제든 만나 가슴을 열고 대화할 용의가 있으며 그 기회도 열어 놓고 있다. 또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도 존중하되 우선순위 결정 등 실무자의 접촉과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남한 정부의 진실성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중순 평양에 다녀오면서 본 로동신문에는 ‘비핵·개방·3000’을 ‘핵소동’으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존중표시를 ‘기만전술’로 단정하고 있었다. 북한이 남한정부를 믿지 않으려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남남 갈등에서 비롯한 새 정부를 향한 비방선전도 한몫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슬프기까지 했다.
미국에서 20여년간 유태인과 함께 일을 하면서 보아 온 것이지만, 유태인은 내부에서는 서로 다투지만 외부에는 한데 뭉쳐서 대응한다. 1962년 함석헌 선생이 미 국무부 초청으로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워싱턴 교포 중 몇 명이 찾아와 교포들에게 독재정권을 규탄하는 말을 부탁했다. 그때 함 선생이 ‘나는 한국 내에서 규탄하고 싸우지 밖에서는 내 나라 욕을 안 한다. 당신들도 욕하려면 한국에 들어와서 하기 바란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함 선생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의 남북경색을 풀기 위해서는 초당적으로 국민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번에 평양을 방문해 느낀 것이지만 상호 비방을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북으로 비방 전단을 보낸 것은 득보다 실이 크고 특히 새 정부가 방조하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많았다. 이런 가운데도 앞으로 남북과학기술 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평양과기대의 내부 공사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영상회의실이 완성단계에 있으며 원격강의실도 마무리 단계다. 대학 내의 난방장치도 정상적으로 가동돼 추운 날씨였지만 건물 안은 훈훈했고 연결로로 이어져 있어 밖에 나가지 않고 모든 건물을 둘러볼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12월 초에 갖기로 했던 준공식을 뒤로 미루게 된 것이라 하겠다. 아마도 남북이 경색된 가운데 준공식을 연다는 것이 부담이 된 모양이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반드시 기쁜 날이 올 것이다.
박찬모 대통령 과학기술특별보좌관·전 포스텍 총장 parkcm@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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