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포커페이스

 이런 생각을 해본다. G20 국가들이 모여 포커를 한다면 어떨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예상은 미국의 우승이다. 세계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적인 우위가 뒷배경이 될 것이다. 혹여 판돈이라도 떨어진다면 융통해 올 신뢰도 갖고 있다. 일본 역시 만만치 않게 버틸 것이다. 두둑한 외환 보유고에 세계 경제 2위의 자리가 허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G7국가들도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국가 중에서는 중국과 인도가 수로 밀어붙이는 자국민의 응원을 업고 G7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나머지 신흥국과 함께 일찍이 올인을 외치며 ‘그들만의 포커’ 구경꾼으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지나치게 우리나라를 폄하하거나 자괴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다. 혹자는 세계 12위의 경제 규모와 외환 보유고 6위인 대한민국이 그렇게 쉽게 예선탈락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도 역시 속마음은 같을 게다.

상상의 게임이지만 패인을 분석해 보자. 먼저 판돈의 부족을 들 수 있다. 세계 6위의 외환 보유고는 단기 유동성 자금이 상당수다. 조만간 나가야 할 돈으로 무모한 포커를 즐길 수 없다. 혹여 잃기라도 한다면 뒷감당을 어찌하겠는가. 미국의 금융위기에 몸져 누운 한국 경제는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가는 처지다. 무엇이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 최소한의 자금을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 이미 IMF를 겪은 터라 누구보다 잘 안다. 따라서 꽃놀이 패가 손에 들어와도 함부로 내지를 수 없다. 판돈 부족하니 게임을 주도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두 번째 패인은 자신감 부재다.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다 보니, 큰소리 한번 쳐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근·현대사에서 한국은 약자로 살아왔고 눈치보기가 일상화됐다. 대미·대일 경제의존도에 이어 대중국 의존도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무역 협상에서 자신감 있게 나서본 적이 거의 없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은 이미 장을 움직이는 주체 세력이 됐다. 자기 나라 시장을 흔드는 힘이 외국인에게 있으니, 시장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신감은 주권의 핵심이다. 물론 포커에서도 자신감은 최대의 무기다.

세 번째 패인은 전략의 실패다. 현 경제팀은 이번 금융위기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대처능력을 보여줬다. 실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가는 연일 곤두박질치고, 주식시장의 최고 인기상품은 ‘사이드카’라는 우스개까지 만들어 냈다. 원인처방이 아닌 극약처방에 급급하고 ‘건설’에만 자금을 쏟는 것도 전략이라면 전략이겠지만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포커에서 이미 자기의 패를 들킨 것과 같다. 전략 없는 게임에 패까지 들켰으니 결코 이길 수 없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미국의 44대 대통령 선거가 오바마의 승리로 끝났다. 언론들은 마치 한국의 대선인양 대서특필을 주저하지 않았고 정계, 재계 할 것 없이 오바마 인맥찾기에 분주하다. 그러나 어디에도 50% 확률게임에 미리 대비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전략과 준비도 없고, 자신감마저 결여된 무모한 포커에 덤벼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 게다가 아직 그가 꺼낸 카드를 손에 넣지도 않았는데 결과를 예단하는 우(愚)마저 범하고 있다. 우리에게 지금 ‘포커페이스’는 없다.

이경우부장@전자신문,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