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국정감사와 노벨상

Photo Image

 일본 열도가 연이은 노벨상 수상으로 흥분하고 있다.

지난 7일 과학기술 분야 세계 최고의 상인 노벨물리학상을 싹쓸이하더니, 다음 날에는 노벨화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했다는 소식에 열도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일본은 올해를 포함해 그동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7명, 화학상 5명, 생리의학상 1명을 배출해왔다. 노벨상 전체로는 16명이나 된다.

OECD가 지난 4월 발표한 국가 간 총연구개발비(민간 포함) 규모로 보면 우리나라는 336억달러인 데 비해 일본은 우리보다 4배가량 많은 1485억달러, 미국은 무려 3437억달러에 달한다. 경제 규모로 보면 우리나라 총예산은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고, 과학기술 투자 규모로는 4분의 1가량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과학기술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숫자로 단순 계산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족히 2∼3개의 노벨상은 나왔어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의 노벨상 무더기 배출 비결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30년 이상 지속적인 기초과학 투자의 결과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이번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기초과학 분야 지원을 한층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가와무라 다케오 관방장관은 우주 탄생 원리를 구명할 수천억엔대의 국제 프로젝트인 선형가속기(ILC)를 일본으로 유치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의 일화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물리학상을 수상한 입자물리학자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토산업대 교수는 여권이 없어 오는 12월 스웨덴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할 형편으로 알려졌고, 남부 요이치로 시카고대 명예교수는 자녀의 결혼식에 ‘비대칭은 깨질 운명이다’는 자필 축하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오로지 연구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꿈꿀 수 없는 이야기다. 외길 연구만을 고집하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거나, 가능성이 없다는 미명하에 잘려나간 연구원이 부지기수고,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했던 연구원이 한둘이 아니다.

이를 극복할 길은 기초분야 투자에 앞서 일본처럼 한 분야만 수십년간 연구할 수 있는 ‘장인’ 풍토가 우선 조성돼야 한다.

때마침 지난 9일과 10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KAIST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된 국정감사에서는 노벨상에 관한 질의가 봇물을 이뤘다. 이상민 의원(자유선진당)은 “물리학상을 받은 마스카와 교토산업대 교수는 영어는 꼴찌인 반면에 수학과 물리는 천재라고 한다. 수월성 교육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든지 이철우 의원(한나라당)의 “나라가 잘살려면 기초과학을 해야 한다”는 등의 주문이 쏟아졌다.

이에 민동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사실상 일본이 노벨상을 배출하는 데는 30년 전부터 굉장히 큰 투자를 장기간 집중적으로 하기 때문”이라며 “장기적인 거대 투자를 해달라”고 대답했다.

사실 연구원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뻔한 질문에, 당연한 답변이다. 최근 산업기술연구회가 기관 경영 효율화를 내세워 사실상 구조조정에 가까운 안을 내놓으라고 출연연을 ‘압박’하고, 걸핏하면 과제 축소와 과제 수정을 주문하는 현실을 벗어나는 날,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이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

전국취재팀장 박희범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