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에게 듣는다]알 누어 램지 BT디자인 사장

Photo Image

 영국 BT(옛 브리티시텔레컴)는 IBM과 함께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성공한 ‘혁신 모델(Innovation model)’로 꼽힌다. 2001년 BT는 300억파운드(약 62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상황에 영국 정부로부터 다른 통신사에 대한 통신망 개방 명령까지 받았다. 부채가 산더미인데 주된 수입원마저 잃게 될 판이었다. 하지만 BT는 이 같은 흐름을 거스르기보다는 변화의 계기로 삼았다.

 알짜인 이동통신 사업을 매각해 부채를 줄였고, 직원 25만명 중 절반 이상을 내보내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부채도 60억파운드로 줄었다. 지난 3월 마감한 회계연도에서 BT그룹은 매출 207억400만파운드, 세전 이익 25억600만파운드를 기록하며 전화 회사에서 글로벌 IT 회사로 성공적인 변신을 단행하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서 ‘머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조직이 바로 ‘BT디자인’이다. 조직 이름도 회사의 사업과 문화, 고객의 요구를 다시 디자인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BT의 변신과 비전 구현을 총괄하고 있는 BT디자인의 알 누어 램지 사장(54)을 만났다. 그는 BT의 혁신과 ‘컨버전스’라는 새로운 거대 흐름에 대해 얘기했다.

  

-한국이 첫 방문이라고 들었다. 한국을 찾은 이유는.

▲이동통신과 초고속인터넷에 강점을 지닌 한국과 협력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와 KT, 티맥스소프트 등을 방문해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BT는 혁신센터를 통해 전 세계에서 다양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통신 관련 장비와 고객 인터페이스 등 다양한 분야의 혁신을 한국에서도 해보고 싶다. 이미 한국 기업들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혁신 대회’ 등을 개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젊은 생각에서 나오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BT에서 혁신은 어떠한 의미인가.

▲우선 고객의 삶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망 속도가 빨라진다면 고객 삶의 질도 향상된다고 볼 수 있다. 또 통신기기 혁신을 들 수 있다. 애플 아이폰 등장 이후 삼성전자가 유사한 터치 스타일 휴대폰을 내놓는 것도 일종의 혁신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혁신적인 사례는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BT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BT가 적자 확대 등으로 극심한 위기를 겪다 2000년대 들어서 다시 살아났다. 이른바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으로 불리는 BT 변화의 성공요인은 무엇인가.

▲좋은 리더십을 들 수 있다. 2001년 BT그룹의 CEO로 취임한 크리스토퍼 블랜드 경은 이동통신사업부를 분할하고 옐(전화번호 검색 사업부)과 일본, 스페인 등의 해외 자산을 매각하면서 구조조정의 기틀을 닦았다. 성과를 보상체계에 연동해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 그는 직원들에게 사고의 중심도 네트워크에서 고객으로 전환하라고 독려했다.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면서 BT의 변화가 시작됐다. 이후 BT 수입은 연속 17분기, 주당순이익(EPS)은 24분기 동안 2배 이상 성장했다. 부채 비율을 낮추고 건전한 배당 정책을 통해 짧은 기간 동안 구조조정에 성공한 것이다.

-BT가 영국 전역에 설치한 통신망을 이제는 개방하고 있다. 이로 인한 어려움은 없나.

▲고객뿐만 아니라 영국 방송통신규제 기관인 오프컴이 통신망에 대한 경쟁을 원했다. BT가 통신망을 개방한 이후 많은 기업이 이를 이용하고 있지만 망 보수나 투자가 안 되는 등의 문제점은 없다. 영국 정부는 통신망에 철저하게 10%의 수익을 배분해 준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가 기존 망에 추가로 광대역망을 설치하면 이의 투자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막대한 규모의 투자에는 오프컴과 협상해 10%가 넘는 수익을 배분받을 수 있다. 통신망을 개방한다면 이의 유지·보수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시장원리에만 따르면 된다.

-‘컨버전스’라는 거대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향후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 같은가.

▲과거에 통신사는 독자적인 표준을 갖추고 있었고, 심지어 제조 역할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개방적인 표준으로 바뀌는 시대가 됐다. 컴퓨터와 인터넷 등 IT업계에서 공통 표준을 쓰듯이 통신업계도 이 같은 흐름이 옮겨올 것이다. 이 때문에 개방적인 기술과 표준을 사용하는 쪽이 경쟁에서 이길 것이다. 예전에는 각 통신사들이 각자의 표준으로 경쟁했지만, 앞으로는 전체 하나의 생태계로 봐야 한다. 이 속에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디자인까지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시대가 온다는 의미다. 와이브로 같은 것도 그렇다. 단일 기업 하나가 끌고가거나 독식할 수 없다. 협력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다.

-컨버전스가 진행되면서 무선에 무게 중심이 실리지 않겠나.

▲무선이 유선보다는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유무선의 수단이 아니라 고객이다.

 고객이 편리하게 사용하고 누리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점이다. 컨버전스는 장치나 기기의 변화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더욱 많은 편리성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유선사업자에게 인터넷전화(VoIP)는 어떤 의미인가.

▲1위 일반전화사업자가 VoIP를 도입하는 것이 기존 가입자의 포기나 수익 감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일반전화에 대한 대체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VoIP를 이용해 일반전화에서 불가능했던 많은 것이 가능하다. 기본 음성전화 서비스를 무료로 한다고 해도 다른 부가 서비스로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 미국의 VoIP 회사인 리빗을 1억5000만달러에 인수한 것도 회사 자체를 인수한 것이 아니라, 혁신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인수한 것이다. 현재 BT는 이전에 일반전화 회사가 아니다. 이 부문 매출은 30%밖에 안된다.

 BT도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의 사고의 틀을 깨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았다면 고민만 하지 말고 실행에 옮겨라. 직원 불만이 두려워 미적거리면 회사·직원은 물론이고 고객에게도 손해를 준다.

-변화를 주도하는 BT의 신성장 사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글로벌서비스 사업부가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BT 매출의 53%를 차지한다. 삼성전자가 해외에 진출하려면 각종 통신·IT 설비와 이를 운용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외국 업체가 한국에 진출하려 할 때도 마찬가지다. BT가 이를 대신해 준다. BT는 세계 170개국에서 이 같은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업의 글로벌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것이다. 한국에도 450군데 고객사가 있다.

-한국 통신산업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은.

▲BT의 전신인 브리티시텔레컴은 유선 전화망을 독점하고 있어 규제 당국에만 의존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고객 위주의 공정한 경쟁이 BT의 성장 동력이다. 한국은 우수한 인재가 많아 IT 부문이 다시 한번 크게 도약할 것으로 본다. 이제 기업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 된만큼 사업부문별 생태계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정책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변화돼야 한다. 공정환경을 조성하면 산업도 발전하고, 이익도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프로필> 알 누어 램지 사장

 알 누어 램지 사장은 지난 2007년 7월 BT의 프로세스, 네트워크, 제품 및 시스템 설계를 담당하는 BT디자인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BT의 변신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2004년 5월부터 BT이그잭트(Exact)의 CEO이자 BT그룹의 최고정보책임자(CIO)를 역임했다.

 BT에 합류한 뒤인 2005년 1월부터 시장 진출 시기가 110% 이상 빨라졌고, 산출 결과 역시 3배 증가했다. 2007년부터는 BT의 고객 경험 관리도 총괄하고 있다. BT에 합류하기 전, 퀘스트 커뮤니케이션스에서 수석 부사장, CIO 및 최고전자상거래책임자(Chief e-Commerce Officer) 등을 역임하며 IT 및 내부 네트워크, 고객 웹호스팅 부문을 비롯한 비즈니스와 빌링 프로세스를 총괄했다. 2001년까지는 인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 중 하나인 ‘웹텍소프트웨어’의 창업자이자 CEO로 활동했으며, 이전에는 ‘드레스너 클라인워트 벤슨’의 글로벌 CIO를 역임했다.

 공인 재무 분석가(CFA)이며 런던대학에서 전자공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제품 및 솔루션 회사인 미시스와 통신 업계에 엔드투엔드 IT 서비스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세계적인 회사인 테크 마힌드라의 사외 이사, 아이소프트스톤 인포메이션의 독립 이사로 활동 중이다.

 

 BT(British Telecommunications)는 전 세계 170개국에 커뮤니케이션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있다. 주요 사업 영역은 지역, 국가 및 국제 텔레커뮤니케이션 서비스, 고부가가치 광대역/인터넷 제품 및 서비스, 컨버전스 유무선 제품 및 서비스 등이 있다.

 BT의 사업군은 BT 글로벌서비스, 오픈리치, BT 리테일, BT 홀세일 등 4개 사업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3월 31일 마감된 회계 연도에서 BT그룹은 207억400만파운드에 이르는 매출을 기록했고, 세전 수익은 25억600만파운드에 달했다.

 한국에는 지난 92년 BT글로벌서비스코리아를 설립, 외국기업이 국내로 진출하거나 국내 기업이 해외로 확장할 때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통신과 IT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BT디자인은 BT그룹의 IT 디자인과 실행을 담당하는 부문으로 IT 디자인, 구축, 실행과 비즈니스 프로세스, 시스템, 비오픈리치(non-openreach) 네트워크 및 테크놀로지를 총괄하고 있다. 서비스들을 전개하고 실행하는 BT오퍼레이트와 함께, BT그룹의 4개 사업부를 지원하고 있다. BT디자인은 2007년 7월 설립됐으며, BT이그잭트가 그 전신이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