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하드디스크 데이터에 원본이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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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전 대통령이 임의 반환한 하드디스크의 국가기록물 데이터가 원본인지 사본인지를 놓고 봉하마을과 청와대 간 기싸움이 한창이다.

 형법에 찾아보니 사본이란 ‘전자복사기, 모사전송기 기타 이와 유사한 기기를 사용하여 복사한 문서 또는 도화의 사본도 분서 또는 도화’라고 원본과는 좀 다르게 취급하고 있다. 모사전송기란 팩시밀리를 말하니 컴퓨터 복사는 여기에 규정이 없다.

 전자시스템에서 복사한 파일은 눈에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그 전체가 동일하다. 데이터 저장의 가장 최소 단위며 눈에 보이지 않는 비트(bit-8비트가 돼야 한 글자를 표시할 수 있다) 단위에서조차 동일하다. 만약 이 중 어느 비트 하나가 달라졌다면 이는 원본과 전혀 다른 파일이 될 수 있다.

 전산 데이터 파일은 원본이 망가지면 사본에서 복사해 쓸 수 있고 이는 전혀 제약 사항 없이 그대로 원본으로 작동하게 된다. 사본에서 또 다른 사본으로 전파됐을 경우에도 이 사본은 또 동일하며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치더라도 결국 원본과 동일한 모양새를 갖는 것이 데이터 파일이라는 것이다. 복사기로 여러 번 복사해 사본이 흐려지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논란의 중심이 돼버린, e지원시스템의 임의 반환 데이터가 원본인지 사본인지의 구분은 필요 없다.

 문제는 현재 청와대에 살아 움직이는 e지원시스템의 데이터가 있는지, 노 전 대통령이 이 데이터를 임의로 청와대 외 사저로 이관했는지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만약 청와대나 대통령 기록관에 이 데이터를 이용하는 유사한 시스템(예로, e지원 또는 그 유사물)이 존재하며 그 기능이 유지되거나 이미 그 데이터 파일이 있다면 반환된 데이터의 손상이나 누락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반대의 경우, 반환된 데이터의 손상 문제는 심각해지며 그 원인 규명과 함께 그에 대한 책임 문제가 따를 것이다.

 또 만약 노 전 대통령이 동일한 데이터 사본을 확보해 놓고 하드디스크 원본을 반환했다면 이는 반환이라 볼 수 없다. 이 경우 봉하마을 사저에 있는 사본은 이미 e지원시스템의 원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측에서는 필요 없는 하드디스크 등 몇 가지 거추장스러운 물건을 적절히 이슈화해 기록물보관소로 폐기(?) 처분한 결과밖에는 되지 않는다.

 지금 청와대가 반환을 주장하는 e지원 서버는 어떤가.

 청와대의 말과 같이 e지원시스템을 구축한 자체가 잘못이므로 당연히 전체를 반납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측의 주장대로 사재로 구입했으니 반납할 수 없다는 주장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재로 구입한 것은 하드웨어를 말하는 것이지 설치된 소프트웨어는 별개다. 즉 이 하드웨어에서 e지원시스템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하드웨어는 그냥 사용하게 하면 된다. 소프트웨어를 노 전 대통령이 사비로 개발하지는 않은 것 같으니 이와 같이 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것인 하드웨어는 노 전 대통령에게, 국가의 것인 소프트웨어는 국가에 돌리면 된다.

 노 전 대통령이 e지원 서버를 하드디스크처럼 또 임의로 반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이 원본인지, 또 다른 사본을 남기지 않았는지 또 다른 논란에 휩싸일 것은 분명하다.

 서버와 데이터의 확인은 노 전 대통령 측이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때 다른 사본이 봉하마을이나 다른 장소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겸하여 검증해야 한다.

 또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앞서의 논의와 같이 노 전 대통령이 사저에 또 다른 데이터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확인되면, 이 문제는 덮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임득수 한국기업평가원 부원장 ids@kiv.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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