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저작권 침해의 덫](하)그물망에 걸린 청소년을 구하라

 ‘저작권 자살’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불법 파일공유는 최근 일부 법무법인들이 무차별적 형사고소에 나서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고소를 당한 청소년은 뒤늦은 후회와 반성을 하면서 P2P사이트를 탈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같은 행동의 위험성을 경험하지 못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고소·고발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영리를 목적으로 한 ‘헤비 업로더’는 엄중한 법의 잣대를 적용하되 일순간의 무지로 자칫 전과자의 멍에를 안고 살아갈 청소년에게는 반성과 교육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작물의 피해규모에 따라 조사방법 또는 양형기준을 취할 수 있는 표준화된 처리지침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 불법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 파일공유 사이트는 폐쇄 등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도개선을 주문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지평의 이은우 변호사는 “무조건 형사책임을 묻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형사처벌을 가할 수 있는 기준을 높여 놨다”며 “경미한 저작권 침해는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미국은 180일 동안 1개 또는 그 이상의 음반이나 저작물의 가치가 소비자가격 기준으로 1000달러 이상이 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되도록 지침이 마련돼 있다(506. Criminal offenses5)”고 설명했다.

 ◇비자발적 침해자, 구제의 길 열어야=손승우 단국대 법대 교수는 조건부 기소유예제 도입 등 다각적인 모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순간의 공명심과 영웅심 때문에 무단으로 파일을 공유한 청소년을 범법자로 만들 수 있는 현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조건부 기소유예제란 청소년이 무지한 상태 또는 비의도적으로 저작권법을 위반하면 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 것이다.

 오는 6월 22일 시행에 들어가는 소년법(49조3항)에는 19세 이하 청소년에 한해 선도조건부 기소유예제를 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 마련돼 있다.

 이와 관련, 조성제 문화관광체육부 사무관은 “기소재량주의가 있으나 법률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그 동안 많이 제기돼 왔다”며 “법무부 등 관련부처와 세부사항을 협의하는 등 조건부 기소유예제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형사소송을 통한 해결, 바람직한가=일부 법무법인들의 무분별한 고소·고발 남용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대희 고려대 법대 교수는 “저작권은 재산권이다. 재산권 침해문제는 형사보다 민사적으로 푸는 게 맞다”며 “단속과 처벌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 헤비 업로더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승우 교수 역시 “현행 저작권법에서는 영리목적과 상습적인 행위에는 비친고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형사고소와 함께 딜(deal)을 통해 정상적 액수보다 많은 합의금이 책정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법 개정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서비스사업자의 책임 강화=P2P 및 포털 사이트의 책임 강화론도 제기된다. 포털 및 파일공유 사이트에는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 책임을 보다 강화하고, 적극적 필터링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다.

 영국과 프랑스는 규정을 3회 위반한 사이트에 폐쇄명령을 내리는 삼진 아웃제가 시행되고 있다. 이와 함께 불법 파일 복제 등에 관한 방조 책임은 수사당국이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리자의 저작권 보호 노력 요구=DVD타이틀뿐 아니라 영화를 파일형태로 판매하는 등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권리보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대희 고려대 법대 교수는 “영화 등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저작권자 역시 권리보호 노력에 얼마나 투자를 하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며 “합법적으로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 파일복제 및 유통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권리자는 소비자가 만족하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작권법, 이젠 생활법률=10대 청소년을 범법자로 만들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생활법률이 돼 버린 저작권법에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킬 때가 됐다는 것이다.

서달주 저작권위원회 책임연구원은 “커피 빵 등 남의 유체물을 허락받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무체물(저작권)은 사회화가 아직 안 됐다”며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채명기 저작권교육연수원장은 “누구도 저작권법 위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청소년은 엄청나게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법의 무지 및 부적응증의 결과가 법 위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일본 등 선진국에선 이미 정규 교과과정에 저작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오는 2009년 주5일제 수업에 대비한 교과과정(7.5차 교과과정) 개편에서 실과 과목에 들어갈 예정이다.

 ◇CCL운동 확대=지식재산권을 지키려는 권리자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주민 법무법인 한울 변호사는 “청소년이 무지할 수 있기 때문에 경고문구가 표시돼야 한다. 저작권자도 재산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즉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분쟁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보완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작물이용 허락표시(CCL:Creative Commons License) 운동이란, 저작권자가 저작권물의 라이선스 유형을 선택한 뒤 ‘사용가능’ ‘사용불가능’ 등의 이용범위를 표시하자는 것이다. 누구나 그 표시를 보고 사용가능한 콘텐츠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탐사보도팀=김종윤팀장·김원석·윤건일기자 tamsa@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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