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3200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의료기기 시장에서 우리나라 의료기기 생산액은 연간 20억달러가 채 안 되는 실정이다. 소수의 회사를 제외한 1700여개의 국내 기업 대부분이 세계 시장의 1∼2%밖에 되지 않는 협소한 내수 시장에서 경쟁한다. 종업원 100명 이하의 업체가 95% 이상이며, 생산액이 50억원이 넘는 업체는 50여개에 불과하다.
선진 대기업들의 독점 가속화와 중국 후발 의료기기 업체들의 빠른 추격에 한국 의료기기 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한국의 의료기기 수출은 2000년 4억2000만달러에서 2004년 5억7000만달러로 약 35% 증가했다. 그러나 수입은 2000년 7억3000만달러에서 2004년 12억8000만달러로 약 75% 늘었다. 한국 의료기 산업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이러한 추세는 가속화될 것이고 한국에서 의료기기 사업은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첨단 의료기기는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 이 때문에 신뢰도·안정성·정확성이 중시된다. 개발된 제품이 이러한 점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을 고객에게 인지시키기 위해선 고객과 관련되는 인프라, 즉, 마케팅·안전규격·임상·판매·서비스·정확한 고객 요구사항 추출 등에 많은 투자가 요구된다. 또 의료기기 산업은 전자 기술을 근간으로 재료기술·의료기술을 필요로 하는 복합산업이다. IT·BT·NT의 융합 산업이다. 이러한 각 분야에서 여러 신기술이 개발될 때마다 개발된 제품은 자주 업그레이드된다. 고객 관련 인프라를 갖추지 않으면 제품 업그레이드 과정이 느려지거나 고객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국내 기업은 이러한 고객 관련 인프라가 열악하다. 세계 시장 진입에 장벽이 된다. 이를 넘지 못해 내수 시장에만 주력하는 대다수 국내 기업은 영세성을 면치 못한다. 우수한 기술력과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제품 개발의 90%까지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나, 고객 관련 인프라에 관계된 마지막 10%의 마무리가 부족, 세계 시장 진입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고객 관련 인프라를 구축, 고객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 신기술을 먼저 개발하고 개발된 기술을 어떻게 제품화할 것인지를 검토하는 대신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이해하고 제품 및 고객 관련 프로세스에 혁신을 이뤄야 한다. 글로벌 인재들을 모아서 기업체계를 세계 시장의 고객중심으로 만들고 고객관련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의료기기 분야에 정부의 신기술 개발 지원이 이뤄져 국내 의료기기 기술의 저변은 많이 확대됐다. 이를 바탕으로 이제 각종 신기술 개발 지원보다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고 지속적인 수익성을 낼 수 있는 분야에 집중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료기 사업의 대형화가 이루어져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고객 관련 인프라 구축, 신속한 제품의 업그레이드 및 지속적인 신기술 개발이 가능하다. 국내 의료기 산업의 대형화와 영세 의료기기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구심점 구축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의 기업합병, 외국인 투자에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대형화된 국내 의료기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 미래에 지속적인 수익을 낸다면 각종 신의료 기술의 개발은 이 기업들의 수익을 바탕으로 자동적으로 이뤄질 것이고 이들을 중심으로 많은 중소기업이 협력, 한국 의료기 산업은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이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신기술 개발만을 중시하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기업에서 고객과 유리된 R&D 위주의 사업은 많은 위험이 있다. 기업이 수익을 내는 것은 지식(knowledge)을 만들어 내는 연구(research)가 아니라 연구 결과를 이용해서 고객에게 가치(value)를 극대화하는 행위, 즉 혁신(innovation)에서 나온다.
김진하 바이메드시스템 사장 jinhakim@vimedsy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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