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김종갑은 ‘현재 진행형’ 뉴스 메이커다. 지난해 2월 하이닉스 사장 공모가 한창일 때 그를 만났다. 이미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 사장 내정설이 파다한 시점이었다. 산자부 차관에서 막 물러난 그가 공모에 응했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았다. “관례상 산하 기관장 혹은 협·단체장, 대학총장 등으로 옮기는 것이 쉬울 텐데 뭐하러 민간기업 사장직에 도전합니까. 더구나 진 전 장관으로 이미 기울었다는데….” “도전해봐야죠. 평생 공직에 몸담았는데 우리나라 공무원의 진정한 경쟁력과 몸값을 시장에서 평가받고 싶어요.” 의아했지만 진정성을 인정해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걱정이 앞섰다. 그의 경력 탓이다. 행시 17회 출신으로 사무관 시절부터 한미 통상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정책국장을 거쳐 특허청장, 차관을 역임하는 최고 엘리트 코스만을 밟았다. 이쯤 되면 적어도 기업에는 ‘슈퍼 갑’의 위치로 평생을 지낸 셈이다. 이런 그가 하루아침에 ‘을’로 변신하겠단다. 그것도 안전판조차 없는 하이닉스라는 위기기업의 수장을 선택했다. 정확히 대칭되는 ‘갑’과 ‘을’의 속성을 늘 보고 사는 나로서는 “각오 단단히 해야 됩니다”는 실없는 덕담만을 건낼 수 있었다. 결국 그는 하이닉스 사장에 선임됐다. 지난 1년간 수많은 성취를 이뤄냈지만 지금도 ‘김종갑의 도전’은 진행 중이다.
그가 지난주 지식경제부 후배들에게 ‘고해성사’와 같은 ‘당부의 강연’을 했다. 관료시절의 통절한 반성이었다. “기술도 모르면서 기술유출법 만들었고 훈시형 축사만 남발한 점”을 고백했다. “잘하는 기업은 정부에 부탁할 일도 없는데 오라가라 했다”며 “괘씸죄 때문에 눈도장을 찍으려는 기업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규제를 줄이지 못했고 잘못을 철저히 응징하지 못했다”는 것도, “산하기관을 너무 많이 만들고 보여주기 행정에 치우친” 것도 반성했다. 공직자 후배들은 겸허히 받아들였다. 일부에서는 현직일 때는 ‘모르쇠’이다가 이제야 이런 말을 하는 저의가 뭐냐고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지적은 뼈저린 경험에서 나온 절절한 ‘팩트’다. 김 사장은 CEO 1년 만에 우리가 안고 있는 ‘갑-을 문화’의 속성을 체험했다. 30년 공직생활 동안 이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다만 관심이 없었다. 관료사회의 프레임에 갇혀 ‘갑’의 잣대로만 정책을 만들고 ‘을’은 당연히 따라와야 하는 객체로만 여겼다. 그래서 그의 ‘고해’에는 공직사회의 업그레이드 해법이 숨어 있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도우미형’ 정부다. ‘갑’과 ‘을’의 상징체계는 허물어야 한다. 서로가 상대방의 시각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출발선이다. 말로만 되는 일은 아니다. 제도로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과 공직의 과감한 인사교류 확대를 시도해볼 만하다. 이전 정부에서도 개방직과 민관 교류를 시행했지만 실패했다. 개방직은 공무원의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불필요한 오해만 키웠다. 관료를 퇴직시키고 그 자리에 다시 보임하는 편법이 횡행했다. 민관 교류 역시 시늉에 그쳤다. 법으로 보장하는 공무원의 신분을 불안케 하면서 추진하는 제도는 공염불이다. 실·국장 승진에 민간 경력을 필수코스로 넣는 것도 방법이다. 장관 한 명 기업인 출신으로 바꾼다고 공직사회가 변하지 않는다. 배려와 존중은 구호보다 체험에서 우러나온다. 관료집단은 지금도 최고의 인재 창고다. 이들의 후회와 반성은 ‘김종갑의 고해’가 마지막이어야 한다.
이 택 논설실장 et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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