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디스플레이 강국](에필로그)미래의 주역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의 디스플레이 강국으로 끌어올린 데는 수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개발자들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기술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 밤을 잊은 채 연구에 몰두했다. 생산 현장에선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구슬땀을 흘렸다. 전력과 용수 공급에 혹여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긴장을 늦추지 못했던 이들도 있었다. 남들은 모두 국내 시장에 안주하고 있을 때 오직 ‘벤처’ 정신 하나로 척박한 해외 시장을 개척했던 이들은 지금의 수출 주역이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장비에서 패널, 세트 제품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를 향해 혼신의 힘을 쏟았던 이들이 바로 디스플레이 강국의 일등 공신들이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하는 주인공들이 그대로 있기에 미래에 대한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연중기획 ‘영원한 디스플레이 강국’을 연재한 취재팀이 내린 결론이다.

 취재에 협조해준 산업계와 정책 당국에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편집자주>

◆원활한 전력, 용수 공급 위해 `구슬땀`

 휴일에도 밤낮없이 가동해야 하는 PDP 생산현장. 대표적인 장치산업인 PDP 모듈 회사로서는 안정적인 생산능력과 수율은 기본이자 최고 경쟁력이다. 하지만 공장은 화려한 첨단 장비들과 생산인력들에 의해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닌 법. 보이지 않는 곳에서 PDP 생산라인의 파수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전력·용수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유틸리티’ 전담 직원들이다.

 “P4라인의 운영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습니다. 건설 당시부터 지금까지 전력·용수 공급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은 우리 유틸리티파트 전 직원의 큰 자부심입니다.” 삼성SDI 울산사업장 유틸리티파트 이봉주 과장은 지난해 8월 양산 가동에 들어간 P4라인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든든한 지킴이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삼성SDI의 P4라인은 축구장 4개 정도 면적에 총 7300억원을 투입해 만든 국내 최대 규모의 PDP 모듈 생산라인. P4라인을 본격 가동하면서 삼성SDI는 세계 시장에서 수위를 넘볼 수 있는 양산능력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한순간의 전력·용수 공급사고로 회사 전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틸리티 업무는 긴장의 연속이다. 이 과장을 비롯해 P4라인 유틸리티파트가 그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용납하지 않았던 비결은 단순히 책임감 덕분만은 아니다. 전력·용수와 관련된 모든 운전설비를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다시 설계해냈다. 그리고 천안 사업장의 기존 라인을 치밀하게 살펴본 뒤 그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강도높은 교육을 실시했다.

 이 과장은 “제조 현장에 들어가는 각종 유틸리티는 공급원은 물론이고 최종 사용처까지 일괄 관리하는 방식을 도입했다”면서 “생산 현장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사소한 문제라도 즉각 해결하는 ‘찾아가는 유틸리티’ 서비스를 위해 애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업무를 담당한 그의 요즘 걱정은 초고유가 상황이다. 국내 대다수 제조업체들에게 에너지 비용 증가는 현재 가장 큰 위기며 국내 산업계 전반에 미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 과장은 “무사고 운영도 중요하지만 연일 천정부지로 치솟는 고유가 상황을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해 가동 당시부터 고유가에도 버틸 수 있는 에너지 수급 체계를 갖췄다는 점은 우리의 빼놓을 수 없는 경쟁력”이라고 슬쩍 자랑했다.

◆해외 시장 개척은 우리가­ 맡는다-주성엔지니어링

 지난 2001년 장비 업계로는 처음 대만 지사를 설립하면서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던 주성엔지니어링. 국내 장비 수출 역사의 획을 그었던 대만지사 직원들은 이제 더 큰 도약을 위한 원동력이 되겠다는 각오다.

 “처음에는 한국 장비 업체가 대만에 수출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렸죠. 대만 업체들이 일본 장비회사와 워낙 오랜 기간 기술제휴를 맺어왔던 탓에 그 장벽을 뚫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얘기였죠.” 이예승 대만지사장은 초창기 대만 고객사와 어렵사리 만날 기회를 마련하면 일본 회사냐는 질문부터 받았다고 한다. 한국 기술에 대한 신뢰는 애초부터 기대조차 힘들었던 일. 일본 업체와는 비교도 안 될 파격적인 가격에 첫 계약을 성사시킬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의마저 들었다. 언어도 문제였지만 처음 현지 파견 직원들에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음식. 영업을 맡고 있는 이지훈 부장은 “장비 반입과 구축에는 적어도 몇달 이상이 걸리는데 엔지니어들이 현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 매끼를 컵라면으로 떼우는 게 다반사였다”고 회상했다. 물론 지금은 현지인들보다 더 현지식을 즐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주성엔지니어링은 서서히 대만 업계로부터 연이은 수주 실적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국 장비 회사에 대한 인식조차 바꿔놓았다. 영업담당 이진희 부장은 “처음에는 솔직히 일이 없어서 자료 정리로 온 종일을 보내기도 했지만 요즘은 고객사들이 찾는 주문이 많아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면서 “심지어 대만이 전혀 낯선 땅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지영 주임도 “최근 전시회에서 대만 기업 관계자들이 우리 장비와 기술에 몰려 들어 관심을 갖는 걸 보면 가슴벅찬 자긍심을 느낀다”며 “특히 디스플레이와 반도체·태양광 장비를 모두 아우르는 몇 안 되는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자부심을 피력했다.

 이들에게 미래는 매력적인 도전 그 자체다. 대만 패널업체들의 대규모 투자가 잇따르는 가운데 현지 업체들도 태양광 사업 등에 눈을 돌리면서 엄청난 기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한가지 채울 점이 있다면 현지 전문인력의 역량을 배가시켜야 하는 과제. 이 지사장은 “지금은 글로벌 장비업체로 재도약하기 위한 변화의 시기”라며 “특히 현지 인력을 더 많이 채용하고 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더 넓혀 한국 기업 문화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애쓴다”고 강조했다.

◆기고-삼성전자 LCD 총괄 문승환 수석연구원

 문승환 삼성전자 LCD총괄 수석연구원은 LCD 설계 기술 분야에서 최근 6년간 300건이 넘는 특허를 출원한 업계 최고의 엔지니어로 꼽힌다. 국내 LCD 기술력을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은 공로로 지난해 ‘제42회 발명의 날’에는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더 유명하다. 지난 1990년 입사한뒤 줄곧 엔지니어로 활약하면서 탁월한 개발성과를 낸 공로를 인정받아 회사가 선정하는 우수발명자 수상을 9차례나 받았다. 그에게 엔지니어로서의 꿈과 보람, 희망은 남다를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지난 2004년 노트북PC 패널용 특허를 개발했을 때 입사 후 처음 펑펑 울어볼 정도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보다 2년 전 기술개발을 처음 시도할 당시만 해도 해외 경쟁사나 학회에서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회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문 연구원은 당시 거의 1년 가까이는 밤잠을 설쳐가며 샘플을 만들어놓고 연구했다. 엔지니어의 고집은 샘플에서 기술 개발에 성공할 때까지 무려 1000번이나 검토하는 오기를 발휘하기도 했다. “최근 추세를 보면 중국·대만 업체들도 기술력을 바짝 좁히며 추격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경쟁사보다 1∼2년 앞선 특허를 개발하는 것이 곧 회사를 살리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는 생각입니다.” 팽팽한 긴장감속에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엔지니어지만 이런 보람 덕분에 힘든 것도 잊는다고 한다.

 그의 또 다른 꿈은 무엇일까. “디스플레이 업계의 기술경쟁은 가히 전쟁 수준입니다. 완벽한 디스플레이 기술은 아직 없으며 현존하는 기술의 약점을 빨리 개발하는 것만이 미래에도 최고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답입니다.” LCD 전문가인 그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이 속속 출현하고 있지만 LCD 산업이 영원히 발전할 수 있도록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포부다.

 물론 걱정도 적지 않다. 디스플레이는 개발·제조·공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기술이 결합돼야 한다는 점이다. 문 연구원은 “어떤 한 분야의 기술 경쟁력만으로는 산업 전체가 절대 발전할 수 없다”면서 “특히 디스플레이 기술이 진화하면서 전혀 새롭고 창의적인 시도가 더욱 절실히 요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기술은 결국 사람의 손에서 나오는 법. 창의적이고 유능한 후배 엔지니어들이 디스플레이 강국을 위해 청춘을 함께 바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작지만 큰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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