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의식’과 ‘열정’
올해로 11회 째를 맞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2007(SICAF 2007)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석기 한호흥업 대표(62)가 국제 행사인 SICAF와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을 위해 던지는 메시지다.
김석기 SICAF 조직위원장은 “작년에 했던 걸 바탕으로 덧칠하기만 해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시원찮을 행사가 된다”며 “매 행사마다 유연성과 창의력을 갖고 새로움을 추구해야 전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누차 강조한다. 제11회 SICAF 조직위원장으로서 그가 추구하는 목표는 △산업화 기반 확대 △국내 만화애니메이션 산업의 국제화 △전 국민적 축제로의 승화 등으로 요약된다.
개막 첫날인 지난 23일 오후, 특별전시관에는 방과 후 가방을 멘 채 무리지어 온 학생들이 부쩍 늘어났다. 뫼비우스 특별전이 열리는 곳에는 프랑스 국민만화가인 그의 작품에 푹 빠진 중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예년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고무적이다.
지난해 11월 SICAF조직위원장을 다시 맡은 김 위원장을 이끌어 온 것은 지난 95년 제1회 SICAF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의 기억이다. 당시 정부나 기관의 부족한 관심 속에서도 업계의 주인의식과 열정이 성공적 행사 개최를 이끌었던 기억은 그를 강하게 이끌어 주는 힘이다. 하지만 때로는 10년이 넘었어도 변화를 이뤄내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걸 절감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는 점전적 발전으로 이끌어보기로 했다.
김 위원장은 “매년 8월에 열리던 행사를 지난해부터 5월로 옮긴 것도 해외사업자 참여 확대를 꾀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만화 공모전을 국제 대상으로 확대한 것이나 상근 집행위원장직을 둔 것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최종 목표는 전세계적인 국제행사로 각인시켜 나가겠다는 것.
올 SICAF에서는 행사와 산업화의 척도가 되는 비즈니스마켓 SPP(SICAF Promtion Plan) 참가자가 지난 해의 두배인 300여명으로 늘었다. 산업화 기반의 장으로써 행사가 모양을 갖춰가는 것 같아 그도 마음이 놓인단다. 알 자지라 어린이 방송국의 마모드 보우넵 사장이 국내 애니메이션 기업과의 합작을 위해 참가한 것도 고무적이다.
현재 한호흥업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석기 위원장의 경력을 보면 애니메이션 사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그는 졸업후 건설업체인 경남기업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했다. 그런 그가 처음 애니메이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86년 한호흥업의 대표로 취임하면서부터.
법과 건설 그리고 애니메이션.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분야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두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합니다.”
그는 여기에 순수문학을 즐기며 창작자에 대한 존경심과 동경을 품어왔던 것도 현장에서 일하는 애니메이터들과 소통을 훨씬 수월하게 해준 요소라고 덧붙인다.
“기업을 맡았으니 어떻게든 성공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애니메이션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죠.”
김 위원장이 한호흥업 대표로 취임했을 당시만 해도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았다.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각종 도표와 자료를 만들어 그곳이 은행이 됐든 방송국이 됐든 찾아가 이 산업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하곤 했죠.”
그는 애니메이션 산업에 종사하면서 22년간 겪었던 가장 큰 변화에 대해 질문받자 서슴없이 ‘서비스 산업에서 지식기반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아직도 이 과정에서 업계 전체뿐만 아니라 자신의 회사조차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운 점으로 지적했다.
“지금도 참 아쉬운 게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등 히트작을 내놓으며 승승장구할 때 조금 더 창작에 대해 연구했더라면 하는 거예요.”
정부의 지원정책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문화산업의 특성상 결과가 하루아침에 나오지는 않기 때문에 한동안은 지원 정책은 지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 밉TV나 밉콤에 가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류로 취급받던 국산 애니메이션이 이제는 기획력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막 국제무대에 발을 내디딘 국산 애니메이션의 정착에는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은 필수라는 그의 지론이 반영된 것 같아 기쁜다는 표정이다.
그는 지난 지난 3월 만난 오세훈 서울시장이 들려준 ‘경쟁력 강화’와 ‘사고의 외연 확장’을 업계가 새겨 들어야 할 이야기로 자주 거론한다. 자유주의 경제에서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고, 업계 스스로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깨는 시도를 해야한다는 뜻이다.
김석기 조직위원장은 SICAF는 말 그대로 페스티벌이기 때문에 당분간 자립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로부터 2012년까지 지원을 약속받는 등 좋은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반인과의 교감’이라고 감조한다.
“국내외적인 변화를 수용해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고 우리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찾는 일반 관람객에게도 신선함을 줄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난해엔 SICAF 행사장소를 삼성역 코엑스에서 학여울역 부근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로 옮겼다. 갑자기 바뀐 일정과 장소 탓에 10회 행사는 전년도에 비해 호응도가 떨어졌던 게 사실. 김석기 위원장은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장소를 옮기면서 1억5000만원정도 아꼈죠”라며 그 예산으로 기획전시나 컨퍼런스에 더 많은 공을 들여 찾는 사람들에게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게 됐다며 실용주의자적인 모습을 비추기도 한다.
지난 7일 SICAF 기자회견 직후 만찬자리에서 그는 기자에게 과거 한호흥업이 제작에 참여했던 풀 3D 애니메이션 ‘엘리시움’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국내 최초의 풀 3D 애니메이션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관객 수 1만4000명으로 흥행에는 참패했다는 점을 물어보았다. “한동안 창작은 하고 싶지 않으실 것 같다”고 묻자 그는 정색을 하며 “그래도 창작은 계속할 것”이라고 답했었다.
이번에 또다시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비록 매체환경의 변화로 ‘날아라 슈퍼보드’가 세운 시청률 42.8%라는 기록에는 못 미치겠지만 남녀노소 누가 봐도 즐겁게 볼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변함없는 ‘열정’을 내비쳤다. 그는 천상 ‘만애캐(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인’이었다.
이수운기자@전자신문, p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