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가난에 눈물을 머금고 떠나야 했던 조국, 하지만 이젠 이국 땅에서 보는 조국의 반도체산업이 자랑스러워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죄로 11살의 어린 나이에 입양이라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서니 스탤네이커(한국명 염화선·45). 하지만 힘든 과거를 딪고 세계 3대 반도체장비업체인 네덜란드 ASML의 부사장 자리에 오른 지금의 그는, 급성장하는 한국의 반도체산업을 지켜보며 흐믓한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염화선 ASML 부사장은 초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입양돼 양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 미국 반도체업체 TI를 거쳐, 현재는 ASML대만의 지사장을 맡고 있다. 오는 7월에는 한 단계 승급해 본사 부사장 자리에 오른다.
그는 자신의 성공 만큼이나, 한국 반도체산업의 발전이 자랑스럽다. 조국인 한국의 반도체산업 발전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고 싶은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는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입양 이후 개인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병행했다. 지금은 6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조국을 위해 한 일은 별로 없어요. 차라리 급성장한 한국 반도체산업이 저에게는 심정적인 힘이 돼 주고 있습니다. ASML 매출 가운데 4분의 1 가까이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염 부사장이 이번에 조국을 방문한 이유도 한국의 우수 인력을 ASML로 유치하기 위해서다. 그가 겪은 ASML은 인재들에게는 개인은 물론, 궁극적으로 한국 반도체산업 발전에도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ASML은 2000년대 초 하이닉스반도체가 재정적인 문제로 차세대 투자에 어려움을 겪을 때, 기존 포토장비를 차세대용으로 개조해 활용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이닉스에서도 당시 ASML의 노력을 아직까지 고마워하고 있을 정도다.
“당시 하이닉스가 ASML에 도움을 받은 게 사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ASML로서도 기술 역량을 키우는데 큰 보탬이 됐었습니다. 저는 한국기업과 ASML이 윈윈하는 그런 성공사례가 더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가 대만지사장을 자원한 것은 친어머니를 자주 만나기 위해서다. ‘조카들이 너무 이뻐 죽겠다’는 그의 말에서 한국과 가족에 대한 진한 사랑도 느껴진다. 물론 “너무 좋은 분들을 만나 제 인생이 달라졌다”는 말로 길러주신 양부모님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염 부사장은 오는 7월에는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가, 본사 부사장으로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담당한다. 다시 친어머니와는 멀어지지만, 그의 인생에서는 새로운 도전으로 기대감도 크다.
“저는 죽어도 울지 않습니다. 스스로 강인하고자 하는 노력도 있었지만 도전하고 해결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특히 피부가 다른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동양계이자 여자라는 핸디캡은 때로는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강점으로 작용합니다. 인생은 개척하기에 달린 것 아닌가요.”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etnews.co.kr
사진=박지호기자@전자신문, jiho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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