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1의 반도체장비인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가 한국의 R&D센터를 철수한다고 한다. 올해 들어 인텔의 R&D센터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연초 횡행하던 글로벌 IT기업 R&D센터의 탈 코리아가 이제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샌드위치론에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인 IT가 멈췄다는 등의 위기론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5∼6년 후에는 경쟁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지목돼온 반도체 분야다. AMAT의 R&D센터 철수에 걱정이 더 큰 이유다.
AMAT의 R&D센터는 우리나라 반도체 시장이 형성된 초기에 설립됐다. 정부가 우리나라를 동북아 R&D센터로 육성하겠다고 내세워 유치한 R&D센터가 아니다. R&D센터를 설립하거나 폐쇄하는 것은 엄연히 시장논리에 좌우된다. 스스로 설립한 센터를 철수하겠다는 것은 유지할 만한 마땅한 이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IT인프라 및 인적 자원 등을 내세워 지난 2004년 이후 20개에 가까운 다국적 IT기업의 R&D센터를 국내에 유치했다고 성과를 자랑해왔다. 정보통신부 장·차관은 거의 예외 없이 글로벌 기업의 CEO를 만날 때마다 R&D센터의 한국유치를 역설했다. 한국에 글로벌IT기업의 R&D센터가 속속 들어섰던 것은 그들의 공이다.
하지만 우리의 R&D 환경이 좋다면 그렇게 목 쉬게 외치고 다니지 않아도 글로벌기업이 한국에 R&D센터를 설립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R&D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R&D센터를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원인은 글로벌 기업 본사에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열악한 R&D 환경을 꼽는다. 일단 가장 큰 원인은 우리나라 IT 시장의 매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의사소통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외국인 연구원의 자녀를 보낼 교육기관도 여의치 않다. R&D센터 설립을 위해 투자를 했으니 R&D 성과물의 지식재산권을 공유하자는 식의 한국의 R&D 관행도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더는 다국적기업의 R&D센터의 신규 유치는 물론이고 유지조차 힘들 것이다.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 특히 이윤을 좇아 전 세계를 옮겨다니는 글로벌 기업이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R&D센터를 세우는 때는 지났다. 또, 글로벌 기업의 R&D센터는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기업에만 얽매이거나, 단순히 수를 늘려가는 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가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된 배경이다.
글로벌기업의 R&D센터를 우리나라에 유치하기 위한 정책은 이제 유명세나 수의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명기업이 아니더라도 꼭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이 있는 기업이라면 파격적인 지원을 해 유치에 힘써야 할 것이다. 또, 국내 R&D 환경을 개선하는 데도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기존에 들어와 있는 R&D센터가 한국에서 탈출하는 것을 막고, 제 발로 한국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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