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성씨 표기 `네탓 공방`

 대법원과 국립국어원이 전산이기지침과 관련 성씨 표기 문제에 대한 책임을 ‘네 탓’으로 돌리는 바람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5일 대법원 측은 호적 전산화 과정에서 두음법칙을 일괄 적용, 류·라 등 성씨 표기에 대한 민원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립국어원이 이와 관련해 변화된 입장을 내놓지 않아 기존 방침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본지 2월 17일자 1면 참조

 대법원은 지난 2002년 호적 전산화를 추진하면서 성씨에 두음법칙을 일괄 적용, 같은 사람인데도 실생활과 주민등록, 여권 등에서 ‘류’와 ‘유’씨 혹은 ‘라’씨와 ‘나’씨, ‘리’와 ‘이’씨 등이 혼용돼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립국어원 측에 성씨 표기 민원과 관련해 50번 이상 문의했으나 국립국어원이 이 문제를 장기 연구과제로 돌렸다”면서 “호적은 공문서이기 때문에 국어기본법이 정하는 어문 규범을 따를 수밖에 없고 각종 민원에도 불구하고 기존 방침대로 전산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이 같은 방침은 기존의 전산이기지침이 성명권 등 기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지 법원 스스로 검토해 민원을 해결하기보다는 국립국어원에 책임과 결정을 모두 맡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올해 1223억원을 투자해 추진되는 호적 전산화 확대 사업에서도 문제점 보완없이 기존 성씨 표기 지침을 따라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 같은 방침과는 별도로 개별 국민의 별도의 법적 대응에 대해서는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혀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대법원 측은 대전지법 판례와 같이 개별 민원인이 법적 절차(비송 절차)를 거칠 경우에는 각 법원 판단에 따라 성씨 표기를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국립국어원 측은 이와 관련, “지난해 두세 차례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해 장기 과제로 돌렸다”면서도 “그러나 장기 과제 수행을 위한 예산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기관은 또 “우리는 한글표기법에 관한 문의가 들어오면 자문해주는 정도의 자문기관에 불과하다”고 말해 사실상 대법원 측의 문제로 돌렸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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