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북한 과기지식의 디지털화 절실하다

Photo Image

 위기가 곧 기회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이는 위기라는 말에 새로운 가능성이 내포돼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정보화, 특히 디지털화의 사회적 기반을 이만큼이라도 구축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IMF 체제에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공공정보화 사업의 역할이 컸다. 물론 실패도 있었지만 당시에 수행했던 대규모 사업이 밑거름이 돼 다양한 분야에서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환경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IMF라는 난관이 우리에게는 지식정보화 시대를 개척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눈을 돌려 북한의 과학기술 현황을 바라보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과연 북한의 과학기술 분야에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과학기술 분야에서 당면하고 있는 현재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등등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통일을 생각하고 또 남북협력을 모색하려면 당연히 관심을 두어야 할 사항이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매우 부족한 편이다. 북한의 과학기술을 무조건 낮은 수준으로만 이해하기 십상이다. 북한의 경제 현실이 열악하기 때문에 첨단기술 분야의 인적·물적 자원이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북한 과학기술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 수준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도입하거나 활용할 만한 기술이 별로 없다고 미리 판단하는 일도 많은 것 같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수록 북한의 과학기술은 더욱 낙후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일부 특정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연구성과를 내고 있기는 하다. 북한이 핵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미뤄어 짐작해볼 때 그들의 기술수준을 정확히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무시해 버리기도 쉽지 않다. 북한에 대한 단순한 판단이 오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북한의 과학기술 가운데 활용가치가 있는 기술들이 있다. 북한은 외국 기술에 대한 의존 없이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이른바 ‘주체’의 정신을 과기 분야에서도 강조한다. 외국 기술 도입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주체’라는 대의 명분을 내세워 원천적인 부분부터 자체 개발하는 사례가 많다. 의외로 독자적인 기술 영역을 확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북한의 고유기술이나 자생적인 기술을 면밀하게 조사해 현재나 미래를 위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연구성과물인 논문이나 특허, 북한 지역의 특성을 살린 각종 과학기술 데이터는 우리에게도 국가 지식자원으로 활용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통일 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절실하다.

 남한의 각종 연구자원은 공공 정보화사업이나 지식정보자원사업 등으로 대부분 디지털화를 완료했거나 추진 중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정보화나 디지털화 부문에서 우리나라와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원문 보존이나 유통마저도 종이 부족으로 애로를 겪고 있는 형편이다. 북한 과학기술 자료의 보존 및 활용을 위한 디지털화 정책 추진을 서두르지 않으면 이들 콘텐츠는 과학기술 지식자원으로서 유효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북한의 과학기술 문헌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식자원을 디지털 콘텐츠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북한과 공동으로 개발한 멀티미디어 콘텐츠 ‘백두산의 자연’ ‘남북의 천연기념물’ 등은 이미 국내에 발표돼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남북이 협력해 만들 수 있는 디지털화의 대상은 남북의 과학기술 협력이 활성화되고 남북의 과학기술자들이 허심탄회하게 만날 때 더욱 확대될 것이다. 북한 과학기술 자원의 디지털화는 북한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남북협력사업이 적극 추진된다면 더욱 효율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IMF 시절에 공공정보화로 새로운 기틀을 마련했던 것처럼 북한 과학기술 자원의 디지털화는 북한이 갖고 있는 것들을 살려내는 중요한 작업이다. 또 통일을 준비하며, 미래를 함께 열어갈 수 있는 남북 공존의 토대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최현규 KISTI 동향정보분석팀장 hkchoi@kisti.re.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