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유수의 대학이나 기업 연구소가 꼽는 나노연금술의 최고봉은 누굴까. 최근 과학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전자소자나 신소재 개발 동향을 살펴보면 뜻밖에도 곤충이나 파충류가 차지할 몫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세기술 개발을 위해 생물의 구조체를 모방, 나노소재 개발에 응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막스플랑크 금속연구소 연구팀은 곤충의 발바닥을 모방해 신종 점착소재를 개발 중이다. 이 연구팀은 딱정벌레의 손바닥에서 영감을 얻어 버섯모양의 털처럼 생긴 소재를 개발했다. 이 소재는 특별한 표면구조를 가져 별다른 접착제가 없어도 매끄러운 표면에 부착돼 재사용이 가능한 접착테이프, 등반 로봇의 신발 밑창 등에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는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의 김상배씨가 마크 컷코스키 교수와 함께 미끄러운 벽을 빠르게 올라가는 도마뱀 로봇, ‘스티키봇(Stickybot)’을 개발해 타임지가 뽑은 2006년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발에 미세한 털(섬모)이 있고 발가락을 구부리면서 발을 이동하는 모양 등 실제 도마뱀의 발바닥 조직이 갖는 특성을 재현한 이 로봇은 유리벽도 초당 4㎝의 속도로 기어오를 수 있다.
안개를 이용해 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나노소재 개발도 이뤄졌다.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브 사막에 서식하는 스테노카라 딱정벌레는 짙은 안개가 끼는 아침이면 모래언덕 정상에 올라 물구나무를 선 뒤 미풍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등을 향한다. 그러면 등딱지의 매끈한 표면에 모인 물방울이 아래로 내려와 입 속으로 들어간다. MIT의 마이클버너와 로버코헨은 이 같은 물 포집 능력을 본뜬 다공성 고분자로 나노모세관이나 나노스펀지처럼 물을 모으는 돌기를 만들었다.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는 생물이 무기물을 함유한 단단한 구조체를 만든다는 점에 착안해 특수 인공 펩타이드를 이용하는 일명 ‘교호적층법(바이오LBL법)’을 개발, 다종의 반도체 나노입자를 초박막 다층화하는 데 성공했다. 또 캘리포니아대 모르스 연구팀은 바닷속 해면의 자기조립 능력을 모방한 나노구조체를 제작, 고강력 배터리와 고효율 태양전지 제조에 활용될 가능성을 열었다.
이정환기자@전자신문, vict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