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각) CES가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2층 기자실. 화제는 단연 애플의 ‘아이폰’이었다. 기자들끼리 애플 전략이나 휴대폰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토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 애플 CEO도, 아이폰도 라스베이거스에 없었다. 둘 모두 저 멀리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다.
CES 개막 전날인 지난 7일 저녁 베네시안 호텔의 팔라조 볼룸은 수많은 청중으로 가득찼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개막 기조연설을 듣기 위해서다. 빌 게이츠는 PC와 TV를 연결한 디지털 홈 세상을 제시했다. 그의 기조연설이 있기 전까지 같은 호텔에서 삼성전자·LG전자·소니·도시바·샤프·필립스 등 내로라하는 IT업체 경영자들이 새 전략을 발표했다. 현지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잠시뿐, 빌 게이츠 회장 연설 직후엔 쏙 들어갔다.
“차세대 DVD 콤보 플레이어(LG전자), 1테라바이트급 하드디스크(히타치), 108인치 LCD TV(샤프)를 잊어라. CES에 온 사람들은 윈도비스타와 X박스 360전략(마이크로소프트)을 들으려고 기다렸다.” 현장에 있었던 한 외국인 블로거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세계 IT업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남다른 비전을 제시해 세계 IT산업계가 그들의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데 이들이 제시하는 내용이 우리에겐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이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우리에겐 바로 ‘현재’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은 우리의 HSDPA폰에 비해 그다지 나아 보이지 않는다. 빌 게이츠의 디지털 홈도 우리의 홈네트워크 시스템과 별 차이 없다.
지명도와 영향력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 CEO들은 이들을 대신할 자격이 충분하다. 세계 최고의 IT인프라와 서비스, 하드웨어 제조능력을 가진 나라가 아닌가.
“실력이 중요하지 포장이 뭐가 중요하냐”는 반문도 있다. 하지만 포장도 실력이다.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선 실력 이상의 효과를 거둔다. 우리 CEO들이 CES의 기조연설자로 나와 ‘쇼’를 하고, 청중과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미래를 제시하는 장면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라스베이거스(미국)=신화수기자@전자신문, hs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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