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지성 삼성전자 DM총괄 사장
#장면 1
전국의 산하가 단풍으로 곱게 물들고 있다. 일부 관광지는 지금이 대목이어서 숙소 요금은 평소의 두 배를 웃돌기 예사일 것이다. 이런 현상도 여름 휴가철에는 견줄 바가 못 된다. 해운대·경포대 등 전국 유명 해수욕장 근처 숙소는 성수기에는 평소의 4∼5배의 웃돈을 받기 일쑤다. 동해안 해수욕장 개장 초기 ‘바가지 요금’에 피해를 본 피서객의 글로 네티즌이 들끓었고 언론도 비난의 글을 쏟아냈다.
#장면 2
매년 1월 초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세계 최대 소비자가전 전시회(CES)가 열린다. 이 기간에는 전 세계에서 15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린다. 당연히 호텔 요금은 평소의 4∼5배에 이르고 일찍 예약하지 않으면 방 구하기도 어렵다. 해마다 전시회에 참가하는 우리는 늦어도 1년 전에 호텔에 선금을 내고 방을 예약한다. 그렇지만 전시회가 끝나기 무섭게 50∼60달러면 라스베이거스의 초특급 호텔방을 구할 수 있다.
전시산업으로 먹고사는 독일의 주요 도시도 전시기간에는 호텔 요금을 턱없이 높게 책정하고 전시회가 끝나면 원위치한다. 모두 ‘한철 장사’ 혹은 ‘수요공급의 법칙’에 해당하는 사례다. 물론 바가지 요금이 달가울 사람은 없다.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중동에 전쟁이 터져도 유가는 변동 없기를 바라고, 집중호우로 고추 농사가 흉작이라도 가격은 그대로이길 바란다. 하지만 1년에 한 달 남짓 장사하는 휴가지의 숙박시설 운영자가 그때 투자비를 건지지 못한다면 누가 투자하겠는가. 투자 없이 방은 늘지 않는데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은 해마다 늘어 소비자의 불만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의견을 쏟아낼 수 있는 인터넷에서야 그렇다 치더라도 올바른 정책을 유도해야 할 일부 언론조차 피서지 요금이 비싸다고 마구잡이로 나무라는 것을 본다. 모두 ‘가격이 수요공급에 미치는 메커니즘’과 같은 기초적인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 아닌가 싶다. 완전경쟁 시장에서는 공공재가 아닌 한 가격은 가급적 시장 기능에 맡겨 놔야 한다. 여론이 규제 하지 않는다고 야단치니 관이 하지 말아야 할 규제를 하려 나서고 작은 정부를 표방하던 정부의 공무원 수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가격결정’은 예나 지금이나 경영에서 가장 어려운 의사결정 행위 중 하나다. 다양한 고객의 요구가 있고 소비자의 지급 의사나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소비자는 수용할 수 있는 가치 만큼의 가격을 치르려고 한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소비자 피해보상 기준’에 LCD TV와 LCD 모니터의 품질보증 기간을 2년으로 하는 개정안을 마련한 모양이다.
PDP TV의 보증기간을 늘리는 방안도 내년에 논의할 예정이란다. 그동안 이들 제품은 1년간 무상 AS를 해주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TV 품질보증 기간을 법으로 정한 곳은 많지 않다. 원래 선진국에서의 품질보증 기간은 마케팅 수단에 가깝다. 따라서 품질보증 기간을 법으로 정하기보다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경쟁하게 유도하고 있다.
소비자 보호라는 시각에서 보아도 늘어난 품질보증 기간 만큼의 비용을 제조업체가 소비자에게 전가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가격을 비싸게 받고 보증기간을 늘릴 것인지, 보증기간을 짧게 하고 가격을 싸게 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gschoi@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