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강국으로 가는 길](9)IT서비스③성숙된 발주문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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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저가 낙찰 제도는 개발도상국에서 조차 그 사례를 찾아보기 매우 힘들 정도로 후진국형 계약 방식입니다.”

방위사업청 고위 관계자가 우리나라 국가계약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한 말이다. 최저가 낙찰 제도를 비롯한 비합리적인 과업변경, 고무줄식 무상 유지보수기간 등 우리나라 발주처의 계약 문화가 소프트웨어(SW) 산업을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특히 ‘일단 가격부터 후려치고 보자는 식’의 끊임없는 협상 테이블은 사업 초기부터 IT서비스 산업 종사자의 진을 빼고 있다. ‘지옥훈련도 한 두번이지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자조어린 말이 IT서비스 산업계 종사자의 입에 뱄을 정도다.

현행 최저가 낙찰 제도는 과당경쟁에 따른 출혈경쟁을 유발하고, 다시 그 부담은 솔루션 업계로까지 전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보화 사업들이 발주처로부터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성숙된 계약 문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IT서비스 산업이 선진국에서는 고부가치 산업, 우리나라에서는 저수익 산업구조로 구조로 바뀌게 하는 현재 계약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즉 IT서비스 산업이 귤화위지(橘化爲枳)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합리성이 결여된 계약 문화=IT서비스 업체인 A사는 한 중앙부처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계약을 했다. 회사가 투찰한 가격을 갖고 협상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발주기관이 임의로 정한 금액까지 가격 투찰을 계속 요구해서다. 심지어 기술 협상 과정에서 발주처는 추가 요구 사항에 대한 계약금액 증액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B사는 중앙부처와 계약을 하면서 계약 금액에 감리비용까지 떠안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제안요청서에는 별도 언급이 없었는데 갑자기 ‘사업자가 감리비용을 부담한다’는 조건을 협상 내용에 포함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 회사는 감리비용을 미리 제안가격에 산정하지 못한 탓에 그 비용만큼 손해를 본 것이다.

C사는 정부 산하 기관의 물품 구매와 SW개발 용역이 동시에 진행되는 사업에 응찰했다가 제안서 작성비용만 고스란히 날렸다. 출자기관이 응찰 사업자가 제출한 투찰가격중 최저가를 협상가격으로 한다는 방침을 정해서다. 원가 계산에 의해 예정가격을 작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찰자가 제출한 제안가격을 기준으로 예정가격을 작성한 것이다.

D사는 정부 산하 기관이 개발 용역 성격의 사업을 단순 물품 구매 사업으로 전환,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진행한 탓에 개발 의욕이 꺾인 것은 물론 기술력에 대한 가치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해당 기관의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면 그동안 많은 규모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개발한 기술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업체들은 ‘제살깎기’식 과잉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잦은 과업 변경도 IT서비스 업체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프로젝트 수행 중 발주처의 요구에 의해 수행범위가 증가하거나 변경되는 일들이 빈번한 데 반해 이와 관련된 비용은 대부분 지불하지 않거나 혹은 지불하더라도 단순 실비 보전 차원의 지불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IT서비스 업계는 지적한다.

E사는 공공기관의 정보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수주했으나 발주처의 과도한 요구 변경으로 납기가 6개월에서 1년으로 지연되게 됐다. 이에 이 회사는 계약 변경을 요구했으나 발주처가 지체상금으로 위협, 추가 대가 없이 완료해 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결국 IT서비스 업체는 큰 손해를 보고 이 프로젝트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정보화 프로젝트의 잦은 과업 변경을 막아야 IT서비스 산업이 올바로 성장합니다. 해외 선진국은 과업이 결정되고 나면 과제 변경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린 너무 자주 바꿉니다. 이래선 SW강국이 될 수 없습니다.” 국내 대형 IT서비스 기업 사장의 하소연이다.

◇선순환의 해법을 찾아야=IT서비스 업체의 이같은 하소연들은 조사 결과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국내 한 SW관련 협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발주자의 잦은 과업 변경은 예산 초과에 큰 영향을 미칠 뿐 더러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업 변경 발생 주체가 발주자 87%, 사업자 13%로 조사된 것이다. 과업변경의 원인을 제공한 주체가 10번에 9번 꼴로 발주처인 셈이다. 특히 과업 변경은 추가 비용과 프로젝트 지연으로 이어지지만 결국 IT서비스 업체가 지체 상금을 낼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또한 정통부 자료에 따르면 과업 변경에 따른 IT서비스 업체의 개발비는 평균 23% 증가했으며 한국SW산업협회 조사에서도 과업 내용에 따른 기업의 업무량이 평균 3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역시 이러한 문제를 모르고 있지는 않다. 정보통신부가 마련한 원도급 표준 계약안에 따르면 발주처가 사업을 추진하면서 중도에 과업 내용을 변경할 때는 그 내용을 문서화해 내역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추가 소요 비용이 전체 사업비의 10% 이상을 넘어설 때는 ‘과업변경 심의위’를 두고 그 적정성 여부를 심사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IT서비스 업체 한 관계자는 “회계 예규에 이 같은 내용이 반영되면 그 같은 문제가 적잖게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통부가 마련한 시안이 조속히 확정된다면 발주자는 품질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사업자는 수익성이 개선되는 한편 중소 SW업체도 원가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산과 관련된 사안이라 이는 현재 재경부로 넘어간 상태에서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IT서비스 업체들은 미국·유럽 등 선진국처럼 발주자와 사업자 모두에게 이익인 계약 제도가 형성되길 바라고 있다. 미국은 발주자가 작성한 구체적인 요건 정의서를 바탕으로 계약하고 객관적인 변경 관리 절차에 따라 과업 내용 변경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호주는 범위 관리자를 고용, 수·발주자와는 독립적으로 SW사업의 과업 내용에 대한 변경 관리를 하고 있으며 영국이나 독일은 발주자와 수주자간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업 관리 전담 기관을 두고 있다.

행자부 김남석 전자정부본부장은 “공공 분야 발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발주 담당 공무원에게 폭넓은 재량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LG CNS 신재철 사장은 “컨설팅·SI·SW 등 IT서비스 산업의 투자 활성화 분위기를 정부가 조성함으로써 IT서비스 산업이 이제까지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고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이지운 전무(jwlee@itsa.or.kr)

IT서비스 산업은 재론할 여지가 없는 고부가가치 성장 산업이다. 그러나 국내 IT서비스 산업 구조는 아직도 개선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중 가장 시급한 것은 수익을 내는 사업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산업 평균 경상이익률은 10.67%이다. 산업별로 IT를 제외한 서비스산업이 14%, 건설업이 약 12%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IT서비스 산업의 경우는 대형 10개사 평균이 4.7%에 불과하다. 첨단산업이며 고부가가치 산업이고 미래지향적 산업이라 일컫는 IT서비스 산업이 전체 산업의 경상이익률 평균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문제다. 그러면 왜 우리 업계는 저수익 구조를 보이고 있을까? 이는 정보화 사업이 발주처로부터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속에서 진행되고 있어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정보화 사업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적 환경 조성과 합리적인 계약 문화 성숙이 필요하다. 지금 IT서비스 산업은 악순환 고리를 되풀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적정 예산의 미책정이 무리한 수주경쟁을 부채질하고 있고, 이는 저수익 발생의 원인이 돼 기업 R&D 등 투자 부족 현상을 야기한다. 이러한 현상은 고급인력이 IT산업에 진입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원인으로 작용, 경쟁력 약화를 불러오고 있다. 이제 선순환 구조로 전환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IT서비스의 정당한 가치 인정과 환경 조성은 선순환 구조를 가져오는 해결점이다.

둘째, 합리적인 정보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예정가격 산정시 계산방식을 본수계산에서 기능점수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개발 프로젝트의 가격 산정은 2004년 2월부터 정통부 고시로 기능점수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예산 수립시는 이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법적으로는 예산 추정 단계에서부터 발주기관이 SW 사업 대가기준의 기능점수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과거에 수행된 유사사업을 기준으로 예산을 추정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으로는 기능점수가 정착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따라서 정보화 사업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예산 책정시 기능점수에 의한 합리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셋째, 발주기관에 정보화 예산편성 전문가 양성이 요구된다. 발주자의 관리능력 제고를 위해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 육성과 활용이 필요하다. 제안요청서에 나와 있는 한 두 줄의 불명확한 요구사항을 보고 정보화 예산을 수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프로세스별로 요구사항을 구체화 또는 체계화 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호주에서는 IT 프로젝트 범위 관리자(Scope Manager) 제도를 운영, 공공 정보화 예산의 타당성과 적정성을 검토하고 있다.

넷째, 정보화 프로젝트의 예산에 대한 적정성 여부를 외부 전문기관에 검증받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일정 규모이상의 프로젝트는 정보화 예산 책정과 편성시에 한국정보기술원가표준원과 같은 전문성이 있는 기관에 의뢰, 합리적으로 정보화 예산이 책정되었는지를 검토 받을 필요가 있다. 발주기관과 수주기관이 수긍할 수 있는 CFPS(국제기능점수전문가) 자격증 보유자가 참여하여 보다 정확하고 정밀한 발주원가를 검토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안수민기자@전자신문, s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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