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대한 찬반 논의가 뜨겁다. 특히 FTA 저작권분야 논의와 관련, 최근 문화관광부 담당과장이 교체되면서 ‘전쟁중에 장수를 바꾸는 형국’이라든지 ‘지적재산권 분야는 버리는 카드’라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문화부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FTA의 모든 분야가 중요하다’는 원칙 아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항변해왔지만, 저작권법 개정안 처리를 목전에 둔 문화부의 실제 태도는 이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저작권법 개정안은 작년 10월 우상호 의원 등이 발의, 12월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를 통과했고 현재 8개월여 동안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중이다. 이 개정안은 저작권 침해죄의 친고죄 조항을 폐지(제140조)하고,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서비스 제공자에게 파일공유를 차단할 기술적보호조치 의무를 부여(제104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학계와 네티즌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해 왔다.
국회 법사위에 장기간 계류중인 이유도 이 같은 형사처벌 확대가 모든 네티즌과 인터넷업계를 감시와 처벌의 대상으로 보고 ‘팬옵티콘’처럼 잔인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감옥과 같은 국가를 만들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국회는 또 8월 24일에 개정안 처리를 위한 법사위 소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문제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이 저작권자의 목소리만을 반영하는 절름발이 법안이라는 점이다. 또 문화부는 이 법이 FTA 협상과는 별개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오히려 문화부는 FTA 체결 이전에 저작권법 개정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FTA 협상의 빠른 추진을 위해 저작권법을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생각이 반영됐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FTA 체결 결과로 한국이 얻는 게 있어야 할 것인데, 저작권법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면 한국의 문화산업과 인터넷산업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돼도 좋다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또 FTA 협상 전략 차원에서도 미국이 원하는 것을 저작권법의 졸속 개정에 미리 반영한다면 한국의 협상력은 어디에서 찾으려고 하는가.
미국은 다른 국가와 FTA를 체결할 때 저작권 침해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에서도 미국의 저작권을 침해한 한국 국민과 기업에 강력한 형사처벌 조항이 적용되기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소리바다와 같은 저작권침해 사건에서 한국 음반제작자를 비롯한 권리자는 형사고소를 하고 검찰에 의한 공소가 제기된 바가 있지만, 소리바다와 유사한 미국 냅스터 사건에서 냅스터에 대한 공소가 제기됐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다. 이 차이는 우리 저작권법이 미국보다 이미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현실적으로 저작권자가 형사처벌을 훨씬 더 빈번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한국 저작권법상 형사처벌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을까? 미국 정부가 형사처벌 강화를 요구한다면 이는 중요한 협상카드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FTA 협상이 완결되기도 전에 스스로 친고죄 조항을 삭제하고 형사처벌을 강화한다면 미국 협상단은 싸우지도 않고 희망하는 것을 얻게 되고, 한국 협상단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중요한 카드를 잃게 된다. 이로 인해 수많은 네티즌이 잠재적 죄인 취급을 당하고 한국의 문화산업과 인터넷산업이 위축된다면, 과연 FTA 체결로 한국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저작권법 개정이 FTA 협상 추진에 진실로 필요하다면, 그 필수 전제조건으로 FTA 협상의 세부내용이 공개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FTA 협상 내용은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고 있다. 구체적인 손익 분석도 없이 FTA의 신속한 체결을 위해 저작권법 개정을 서두르는 것은 엄청난 난센스다. 의원들의 입법실적을 위해, 공무원의 권한 강화를 위해 저작권법이나 국내 문화산업과 인터넷산업이 희생돼서는 안 될 일이다. 저작권법이 저작권단체의 목소리만으로 개정돼서도 안 된다. 저작권법은 그들만을 위한 법률이 아니고 저작물 이용자와 인터넷 산업을 비롯한 저작물 유통산업의 이익도 보호해야 하는 법률이기 때문이다.
◇정상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sjjong@snu.ac.kr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사설] K-소부장 내재화는 계속돼야 한다
-
2
[데스크라인] OTT 정책, 잃어버린 10년
-
3
[ET시론] AI, 인프라에서 시장과 산업으로
-
4
[최은수의 AI와 뉴비즈] 〈37〉MWC, AI가 바꿀 '통신 권력' 대이동 3가지를 말하다
-
5
[人사이트]손도일 율촌 경영대표 “게임 규제 부담 완화해야... AI 경쟁 시대 대비 필요”
-
6
[김종면의 브랜드 인사이트] ① K브랜드 열풍의 현주소… 세계가 열광하는 K브랜드, 그 빛과 그림자
-
7
[ET시선]반도체와 '근원적 경쟁력'
-
8
[ET단상] 정보통신망법 개정, 韓 보안 생태계 전환점
-
9
[ET톡] 거래시간 확대보다 중요한 전산 안정
-
10
[기고] 전남·광주 통합은 산업 대부흥의 승부처다
브랜드 뉴스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