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다.”
최근 국내 굴지의 SI업체에 한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맞긴 뒤 사업 수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행정자치부의 담당 사무관이 푸념처럼 늘어놓은 얘기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가보면 프로젝트 매니저(PM) 혼자 동분서주할 뿐, 대부분의 인력은 하도급 협력사 직원이고 문제점을 나서 해결하는 ‘키맨’이 없다는 게 이 사무관의 지적이다.
전문화는 시스템통합(SI)을 주력으로 하는 국내 IT서비스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특히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전문화와 대형화가 필수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두 마리 토끼를 쫓는 데 있어 IT서비스 업계는 현실적 한계를 말한다.
하지만 IT서비스 업체들의 선도가 있어야만이 국내 SW시장의 해외진출 교두보가 생긴다. 특히 ‘2010년까지 세계 100대 IT서비스기업 10개 육성’이라는 정부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한계를 극복하는 업계 스스로의 노력과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전문가가 없다=IT서비스 산업은 ‘사람 장사’다. 즉 사람에 대한 투자가 IT서비스 업체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특히 인건비가 가격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력 수준이 사업 성패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T서비스 업체가 수주하는 프로젝트의 평균 수익률을 5∼7%대로 보면 인건비 대비 수익을 얼마나 높이느냐가 결국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느냐의 관건이 된다. 업체간 인건비 대비 수익률 싸움, 즉 똑같은 수의 인력을 투입했을 때 누가 더 큰 효과를 거두느냐의 경쟁은 인력의 질적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업계 스스로도 국내 IT서비스 업체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로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 양성에 소홀하다는 점을 손꼽는다.
한 분야에 특화된 전문 인력을 양성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의 업체들이 인원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 수의 프로젝트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계열사 시스템관리(SM)에 상당수의 인력을 투입하는 일부 대형 SI업체를 제외하고 국내 20대 SI업체에 해당하는 업체들은 평균 1000명도 안되는 인원으로 1년에 수백개의 프로젝트에 마구잡이로 참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한 사람이 두세 가지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지난해 업계에서 한 프로젝트의 제안설명회를 위해 전문 프레젠테이터를 임시로 투입한 뒤 그 사업을 수주하면 그때서야 프로젝트 매니저(PM)를 교체하는 관행이 만연하자 급기야는 발주처에서 ‘지정된 프로젝트매니저가 직접 제안설명을 할 것’을 필수조건으로 명시해 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한 전례도 있다.
이같은 비전문화는 수주업체 뿐 아니라 발주처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문제는 증폭된다. 특히 공공 프로젝트에 있어 잦은 담당 공무원의 변경과 그에 따른 사업 변경, 해당 업무의 지식 부재 등은 프로젝트 자체를 부실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안도 속속 나오고 있다.
이철수 경원대 소프트웨어대학원장은 “소프트웨어 및 시스템통합(SI) 사업대가를 발주전에 미리 현실에 맞게 산정해 주는 전문기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다 정확하고 정밀한 발주를 위해서는 발주 전문 기관의 위탁을 통해 사업이 시작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김남석 행정자치부 전자정부본부장은 “전문화된 발주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우선 현행 감사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징벌 위주의 감사로는 보신적 발주만이 남발될 수 있다는 것이 김 본부장의 주장이다. 예컨대 ISP를 해보고 정 아니다 싶은 사업이면 그 단계에서 과감히 접을 수 도 있어야 하나, 그렇게 되면 당장 해당 공무원이 감사 지적을 받는 등 불이익을 겪는다. 따라서 알고도 모르는 척 부실 발주가 이뤄진다는 얘기다.
김인 삼성SDS 사장은 “국가 정보화사업에서 발주기관의 요구로 사업자의 업무범위가 수시로 바뀌고 있으나, 발주기관이 이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인정해 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발주기관이 변경관리 시스템과 같은 장치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화·글로벌화를 위한 노력=최근들어 국내 IT서비스 업계서도 전문화·글로벌화를 위한 가시적 노력이 성과를 보고 있다.
특히 LG CNS·대우정보시스템·포스데이타·동부정보기술·피보텍 등 IT서비스 업체들이 중국·일본·중동 국가 등 인구가 많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국가를 대상으로 투자를 확대하거나 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LG CNS는 글로벌컴퍼니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중국과 인도에서 영업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글로벌 개발센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현 500명 규모인 현지 법인을 600명 수준으로 키우고 이를 통해 중국법인 매출을 대폭 높인다는 계획이다.
대우정보시스템도 지난 5월 말 중국 선양의 최대 SI업체인 뉴소프트와 사업협력에 관한 협약서 초안을 교환한 후 최근 본계약을 했으며 이르면 8월 중순께부터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포스데이타는 철강 고객사 위주로 전개해오던 SI사업을 비철금속 분야로 확대하고,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사업을 강화한다. 동부정보기술은 중국의 홍우청산 등과의 제휴를 토대로 구축한 네트워크를 활용, 하반기부턴 솔루션 수출과 공공분야 시스템통합(SI)사업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또 피보텍은 사우디아라비아·리비아·카타르 등 아랍권 국가를 대상으로 한 SI는 물론이고 보안·e러닝 솔루션 수출 기회를 넓히고 있다. 이 회사는 7월 초 두바이 사무소를 법인으로 승격시켰으며 이달엔 홍콩과 중국시장을 겨냥한 수출 거점 확보 차원에서 홍콩법인을 신설키로 했다.
이밖에 신세계아이앤씨는 사내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인 ‘ICCP(I&C Certified Professional)’을 통해 스페셜리스트 양성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는 전문화를 꾀하는 IT서비스 업계의 발전적 모습으로 해석된다.
문형남 숙명여대 대학원 교수는 “사람이 전부다 시피한 IT서비스 업계서 전문가 양성은 글로벌화를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라며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업체 간 저가경쟁은 지양하고 기업별로 차별화한 맞춤식 마케팅 전략을 전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정부 수출` 그로벌화 촉매
IT서비스 업체의 글로벌화의 촉매는 결국 ‘전자정부 수출’에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를 개발도상국 등을 상대로 접근, 이를 교두보로 한국의 첨단 IT서비스를 해외 마케팅화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자정부 수출은 개도국이 대부분인 발주 국가에 차관지원을 통해 진행됨에 따라 사전 조사절차가 복답한데다 차관지원이 확정되기 까지 최소 30개월이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성사된 수출건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부는 전자정부 수요와 시장접근 용이성 등을 감안해 권역별 거점국가와 전략분야를 선정하고 정부간 협력사업, 컨설팅 지원 및 공적 원조까지의 전 과정에 정부의 지원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최근 밝혔다.
노준형 정통부 장관도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재정경제부, 외교부, 행정자치부 등과 공동으로 수립한 ‘전자정부 시스템 해외진출 활성화 방안’ 보고를 통해 전자정부 시스템이 IT해외시장 창출 및 국가브랜드 제고의 유용한 수단으로 부각됨에 따라 정부 차원의 지원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같이 보고했다.
정통부는 특히 개도국에 대한 전자정부 마스터플랜 수립 및 사업별 타당성 조사 사업에 대한 지원예산을 올해 16억7000만원에서 내년에는 25억원으로 늘리고 무상원조를 활용해 조달, 관세 등의 파일럿 시스템 구축지원을 강화해 국내 IT서비스 기업들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전자정부 시스템 지재권을 개발기업과의 협의에 따라 기업에 귀속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 IT 서비스 기업들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개도국의 전자정부 사업 수주를 위해 경제개발협력기금(EDCF) 등 공적원조를 전자정부 등 IT 서비스 분야에 최우선 지원하고 금리 등 우대조치를 탄력적으로 적용토록 함으로써 국내 기업의 개도국 전자정부 프로젝트 수주가 더욱 쉽도록 할 방침이다.
정통부는 향후 권역별 거점국가를 중심으로 전자정부 협력전략계획을 수립하고 기존 해외 IT지원센터(iPark)의 기능 조정 등을 통해 전략적 지원활동을 강화해 나가는 등 후속 추진계획을 마련하는 한편 정통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IT서비스해외진출협의회도 활성화해 나갈 계획이다.
◆기고/전문화·대형화 두마리 토끼를 잡아라
: 명욱식 IT서비스정책기획협의회장(mwseek@skcc.com)
국내 IT서비스 산업의 발전방안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진단과 처방을 제시해왔다. 그 덕분에 비록 느린 걸음이었지만 많은 산업 환경 개선이 이뤄졌다.
지난해 12월에는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SW산업규제개선 방안이 확정돼 과업내용 변경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을 비롯해 △지체상금 부과 기준 △산출물에 대한 지적재산권 △하자보수·유지보수 기준 등을 담은 ‘SW사업계약일반조건’의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SW산업 특성을 반영, 노임단가와 사업대가의 산정기준이 되는 SW기술자의 등급 및 자격기준과 제안서 보상기준도 조만간 마련될 전망이어서 합리적인 사업수행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상당수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IT강국에서 소프트웨어 강국으로’라는 기치 아래 미래지향적이며 발전적인 측면에서의 산업 육성방안이 보다 큰 틀에서 논의돼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원가보전 방식의 사업형태는 개선돼야 한다. 지금처럼 투입인건비와 관리비를 보전하는 방식으로는 IT서비스 기업의 수익성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역량개발과 고급인력 양성 투자 의지마저 약화시킨다. 과감하게 현재의 노임단가 산정방식과 사업대가 기준을 혁신적으로 개선, 서비스의 가치와 성과에 대한 시장가격이 형성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전문기업 육성과 대형화를 유도하기 위해 IT아웃소싱 시장 활성화에 정부가 앞장 서야 한다. 이미 선진국은 IT 아웃소싱 분야가 전체 IT서비스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IT아웃소싱 시장 활성화는 프로젝트 중심의 사업 형태를 장기계약을 통한 전략적 관계 구축 형태로 바꿔 IT서비스기업의 안정적인 경영과 투자를 담보해 줌으로써 전문화와 대형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컨설팅 분야의 육성도 시급하다. 국내 IT서비스산업의 고도화 및 세계화를 위해서는 세계 수준의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se)를 많이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선진 업무 프로세스와 산업지식을 축적, BPR/ISP 분야의 컨설턴트와 아키텍쳐급 고급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고급인력이 IT컨설팅 분야에 유입될 수 있도록 컨설팅사업 대가 기준을 개선하고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에서는 반드시 BPR/ISP를 수행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시장 활성화 정책이 요구된다.
또한 IT서비스 기업과 유망 중소기업과의 협력관계가 중요한 만큼 상호 기술교류 및 마케팅 협력 등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정부정책도 지금까지와 같은 시장분할 정책이 아니라 시장 통합 정책으로 전환하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 글로벌 경쟁력 확보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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