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속으로 떠나는 여행]#27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의 목적은 바로 세계 정복! 오랜 옛날 알렉산더 대왕도, 징기스칸도, 나폴레옹도, 물론 히틀러도 달성하지 못했던 바로 그 세계 정복을 위해 그는 일어선 것이다. 하지만, 느낌표를 포함해도 고작 다섯글자에 지나지 않는 이 단어를 이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던 과거의 정복자들은 대부분 슬픈 결말을 맞이해야 했고, SF 속의 정복자들은 그보다 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들을 가로막는 방해꾼들은 너무나 많다.

슈퍼 영웅에서부터 로봇 만들기를 취미로하는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저명한 과학자, 최근엔 회사원에서부터 여고생, 아니 초등학생들까지 세계 평화를 지키겠다고 설쳐대니 말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세계 정복도 여럿이 하면 훨씬 쉬워질 수 있다. 바로, ‘악의 군단’이라는 이름 아래….악의 군단. 그것은 세계 정복을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방해꾼은 많고 여정은 기니 혼자서 도전하긴 너무 번거롭다고 할까?

그리하여 악당들은 하나로 뭉쳐 이에 대항한다.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의 목적 달성에 방해가 되는 적수 ‘정의의 용사’ 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실례로, 영화 ‘배트맨 포에버’에서 두 악당이 동맹을 맺기도 했지만, ‘세계 정복’과 같은 목적을 위해선 일시적인 동맹이 아닌 보다 강력하고 충실한 ‘조직’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군단’. 즉, 군대와 같은 조직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대기업이나 군대 같은 피라미드 구조를 따른다. ‘악의 대마왕’ 총수를 시작으로, ‘사신 박사’나, ‘파괴 장군’ 같은 간부들이 존재하고, 여기에 강력한 초인(‘개조인간’이나 ‘초능력자’)이 따른다. 물론, ‘용사’들이 뭉쳐서 덤빌 수도 있으니 그들을 막고 시간을 끌어줄 ‘졸개’들이 있다면 금상첨화.

그들의 복장은 물론 패셔너블할 수 있지만, ‘미션 임파서블’의 시대 얼굴을 보였다간 당장 잡혀갈 수도 있으니 얼굴을 가리는 것은 기본이다. ‘어둠의 닌자 군단’ 스타일에서 쫄쫄이를 입은 ‘전투원’에 이르기까지 전원이 ‘맨인블랙’이 되는게 마땅하다. 물론, 간부나 초인 쯤 되면 선글래스 하나로, 아니 아예 얼굴을 드러내 놓고 다녀도 지장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야말로 로마 군단이나 히틀러의 친위대 같은 통일된 복장, 여기에 군대와 같은 조직적인 모습으로 그들은 활약한다. 그 자체만으로 ‘폼’이 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능률도 상승. 게다가 그들이 ‘레인보우 식스’나 ‘고스트리콘’ 정도의 재주만 보여준다면 그야말로 더 바랄게 없겠지만, 그래서는 ‘정의의 용사’가 너무 불리해 지게 마련.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실적보다는 우선 ‘폼’을 잡는데 지나치게 애를 쓰고 결국은 당하고 만다. 그야말로 ‘폼’의 전형이라 할만한 ‘스타워즈’의 스톰 트루퍼들은 아무리 폼 잡고 달려들어도 눈 앞의 주인공 하나 쏘아 맞추지 못하고 탄환만 낭비한다.

보스에서 부하까지 항상 유쾌하게 웃음만 지을 뿐 실전에선 매번 당하기만 하는 ‘독수리 오형제(과학닌자다 갓차맨)’의 알렉터 군단도 마찬가지다(바로 앞의 적도 못 맞추는 맥가이버의 악당들도 ‘눈뜬 장님’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역사상 어떤 정복자도 세계를 정복하지 못했듯, SF 사상 그 어떤 악의 군단도 목적(세계 정복 외에도 다양한 목적이 있으며, 그 중엔 ‘드래곤볼’의 레드리본군 총수처럼 단지 ‘키가 조금 커지기 위해’ 작전을 실시하는 사례도 있다)을 달성하지 못했다.

대개는 폼만 잡고 심지어 간부끼리 알력 다툼이나 하는 가운데 그들은 하나 둘 ‘정의의 용사’에게 무너지고, 결국 조직이 엉망진창이 되는 가운데 대마왕을 비롯 조직원 전원이 패가망신하기 일쑤다.

실례로 그나마 성공하는 듯 했던 ‘팔파틴’ 황제의 은하제국조차 제다이 몇 명을 놓치는 바람에 데스스타와 함께 종말을 맞이해야 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까?

‘권선징악’ 악의 군단은 이런 교훈을 남겨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마디로 들러리인 셈. 주역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 이상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당하면서도 다시금 일어나 ‘악의 길’을 관철하는 그들의 의지는 분명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더욱이, 4~5명으로 구성되는 ‘정의의 전대’에 대항해 어째서인지 항상 정정당당하게 덤벼오는 몇몇 악의 군단들은 그야말로 ‘폼생폼사’의 귀감이라 해도 좋을 정도. 헬 박사도, 미케네 군단도, 물론 UFO 군단이나 기타 여러 조직들도 부하를 하나씩 보내는 건, 역시 정정당당하게 폼을 잡고 싶은게 아닐까?

게다가, ‘세계 정복’ 을 노리는 군단이라고 해서 항상 비겁하고 잔인한 짓만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듀얼 패러럴 룬룬 이야기’의 악당 ‘라라 군단’은 항상 ‘커밍순(Comming Soon)’이라는 방송을 통해 “이번에는 어디를 공격한다”고 미리 예고해 피난할 시간을 주고,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로 유명한 유우키 마사미씨의 패러디 작품 ‘어셈블 인서트’의 악당 ‘데몬 시드’는 은행 하나를 털어도 꼭 사전에 예고를 하고 시간에 맞추어 공격해 들어간다.여기에, 지구 침략을 위해 쳐들어왔다가 식객으로 얹혀살고 있는 ‘케로로 소대’같은 경우에 이르면 그야말로 웃음이 나올 정도다. 여기에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스페이스 볼’이나 ‘오스틴 파워’처럼 처음부터 웃음을 주기 위해 등장하는 악당들 여기에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 등장하는 SOS단처럼 뭐가 뭔지 모를 단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채로운 ‘악의 군단’이 존재한다.

이렇듯 진지한 적수로서보다는 ‘개그 캐릭터’나 ‘레벨업 몬스터’처럼 취급되기도 하는 ‘악의 군단’. 하지만, 그들이라고 마냥 바보 같고 유치하고 웃기는 것 만은 아니다.

진지하게 이를 데 없는 ‘악의 군단’ 중에서 최근 소설로 발매된 ‘하이퍼 하이브리드 오거나이제이션’의 유니콘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정의의 사도’의 싸움 중에 연인을 잃고 복수를 하기 위해 ‘악의 조직’에 가입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 속의 조직 유니콘은, 부하들의 훈련 하나부터 철저하게 진행되고 그야말로 어지간한 정보조직 이상의 극비 체제로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야쿠자의 거래를 급습해 자금을 얻기도 하는 그들은 경찰 따위는 우습게 여기고 멋대로 행동하는 여타 ‘조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떤 면에서는 영화 ‘대부’에 나오는 패밀리 이상의 느낌일까?

그들이 그렇게 활동하는 것은, 사실 현실 속의 ‘공권력’이 생각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다. 경찰도 군대도 사실 영화 속의 그것처럼 무기력하지 않고 매우 위력적인 조직이기에, 제 아무리 ‘초인’이 있다해도 세력으로 비교할 수 없는 ‘악의 군단’은 비밀리에 활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처음부터 세계 정복은 멀찌감치 던져 버리고, 그 반의 반, 아니 반의 반의 반의 반 그래서 마을 하나를 정복하려는 소박한 꿈을 꾸는 조직(‘엑셀사가’의 아크로스나 ‘레벨 저스티스’의 발키르 등)들도 가끔씩은 등장한다.

이렇듯, 단순한 악당으로서가 아니라, 조직으로서 목적 달성을 위해 활약하는 ‘악의 군단’. 비록 웃음거리가 되고 들러리로서 주인공의 샌드백이 되기도 하지만, 그들 영웅이 존재하는 한, 악의 군단 역시 영원하리라. ‘엑셀사가’ 총수 이하 간부 하나. 여기 이상 조직 아크로스에 의한 세계(아니 마을) 정복이 시작된다.

그래도 정의가 있는 한 악은 영원하리라.

목적을 위해. 그리고 다음의 목적을 위해.

우주에서 바다 속까지 정의의 용사들은 없는 곳이 없다. ‘선더버드’

소년 탐정이라면 거대 로봇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

떼거지로 몰려드는 것은 기본. 그리하여 악의 군단이 탄생한다.

요즘은 이런 정의의 사도가 너무 많아서 탈이다.

리들러와 투페이스. ‘배트맨’이란 공통의 적을 위해 두 악당은 손을 잡는

다.

악당들이 손을 잡는 것은 흔한 일. 하지만, 진정한 악의 군단은 더욱 더 달라져야 한다.

간부 넷의 작은 조직이라 깔보지 마라. 이래봬도 세계 정복 결사.

악의 간부들이라면 이정도 폼은 잡아야 한다.

닌자 군단? 악의 군단은 기본적으로 정체를 감추는 것에서 시작한다.

같은 제복에 같은 분위기. 악의 군단에 필수적인 요건이 아닐 수 없다.

악당이라면 얼굴을 가리는 것은 기본. 그것이 그들의 매력이다.

‘우리들의 빅파이어를 위하여!’ 얼굴은 가리고 같은 구호를 외치며! 이것이야 말로 악당의 낭만이다!

졸개들이라고 우습게보지 말라. 그들 역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수만 많다고 좋은 건 아니다. 이처럼 당할 수도 있으니까.

‘기뉴 특전대’ 역시 뭔가 폼을 잡는 게 기본이 아닐까? 물론, 폼 잡는 놈치

고 오래 가는 거 못 봤지만.

폼 잡는 부하들은 항상 대마왕(?)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전기를 뿜는 거대 로봇 정도는 있어야 악의 군단이라고 할 수 있겠지?

단지 키가 커지기 위해서 드래곤볼을 모으는 레드 총수. 때로는 이처럼 유쾌한(?) 목적을 갖기도 한다.

‘사이보그 009’ 그들이 멋지고 강한 건 사실이지만, 자기들이 만들어놓고 못 이기는 블랙 고스트는 ‘대략난감’

사악한(?) 과학자 데몬 박사가 이끄는 ‘데몬 시드’ 루팡처럼 예고를 잊지 않는 친절한 면모를 갖고 있다.

악의 총수 일가의 단란한 모습. 악의 군단이라고 항상 삭막하지 만은 않다.

악의 꽃. 여간부들을 잊지 말자.

이들 역시 악의 군단. 하지만, 엉뚱한 웃음을 전해준다.

‘스페이스 볼’.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이 유쾌한 작품에선 역시 바보 같은 악당들이 웃음을 준다.

그야말로 뭐가 뭔지 모를 SOS단. 이 괴상한 댄스를 자신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는게 충격!

진지한 영웅들을 상대하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걸고 덤빌 필요도 있다.

<전홍식 기자 pyodogi@sfw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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