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IT강국이 봉인가(?)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다. 자화자찬 격이 아닌 세계가 인정하는 IT 강국이다. 정보통신과 관련한 모든 신기술의 적용이나 보급 속도도 세계 제일이다. 흔히 해외 유수 IT기업은 이제 막 개발한 최신 기기나 장비의 시험무대로 우리나라를 선택한다.

 해외 출장 시 만나게 되는 현지 고위관료나 IT 기업인은 우리나라 IT 실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자부심을 느낄 만한 대목이다. 과거엔 ‘코리아’가 어떤 나라인지, 아니 있는지조차 모르는 외국인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이나 경제 발전의 성공모델로 우리나라를 꼽을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젠 한국제품을 본뜬 모사품도 횡행한다.

 하지만 최근 중국 출장을 다녀온 뒤로 찜찜한 구석이 생겼다. 우리가 IT 강국이라는 수식어에 속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세계 유수 IT기업이 중국의 PC 업체에 베푸는 특혜 때문이다.

 중국의 한 PC 제조업체는 PC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업체에 중국판 윈도XP를 카피당 20달러에 공급한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가격이다. 이에 질세라 인텔은 주력 CPU를 타국의 다른 PC 제조업체에 공급하는 가격보다 20달러 싸게 책정한다. 그 중국 PC업체의 생산 규모나 시장점유율은 우리나라 삼성전자나 LG전자에 훨씬 뒤처지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성장잠재력을 보고 파격적인 특혜를 제공중이다.

 일반적으로 PC 한 대의 마진이 수만원으로 급락한 상황에서 중국 PC 제조업체에 보장되는 이 같은 특혜는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더 마음 상하는 일은 중국 PC업체 간부의 말이다. 곧 마이크로소프트와 가질 미팅에서 한국 수출용 PC에 포함할 한국판 OS의 가격도 낮춰 보겠다고 밝혔다. IT 강국이 중국의 선처를 기대하는 처지가 됐다.

 세계 유수 다국적 IT기업, 특히 미국업체로부터 당하는 이 같은 차별대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퀄컴의 로열티 문제도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우리는 세계 유수 IT기업의 이중성을 보고 있다. 우리가 IT 강국에 걸맞은 대우나 대접을 받고 있는지 따져 볼 일이다. 제 밥그릇을 못 챙겨 멀쩡히 눈 뜨고 당한다는 느낌이 든다. IT 강국은 봉이 아니다. 칭찬에 안주하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컴퓨터산업부·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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