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국가재난망 더이상 재난 없어야

 국가재난망 구축사업이 다음달 본궤도에 오른다. 총 3842억원이 투입돼 국가기관 11곳, 자치단체 250곳, 공공기관 19곳 등 280여곳에 디지털방식 주파수공용통신(TRS), 일명 테트라망이 도입된다. 사업이 완료되는 2008년이면 경찰서·군·소방서 등 관련기관이 전국 어디에서나 동일한 테트라망을 이용하므로 원활한 정보교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재난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난발생 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뒤늦게나마 국가재난망이 구축된다니 다행이지만 장비도입이 끝이어서는 안 된다. 관련기관 간 효율적인 협조체계와 명확한 지휘체계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더불어 재난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지식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국가재난망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어렵사리 구축한 국가재난망이 또 다시 인재로 인해 재난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재난기관을 통합할 수 있는 지휘통신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은 지난 2003년이었다. 그해 2월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와 여름 태풍 매미로 온나라가 난리를 겪으면서다.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엄마 사랑해….” 2003년 2월 18일 장계순씨와 딸 이선영씨의 마지막 휴대폰 통화 내용은 아직도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당시 지하철 화재를 집에 있는 어머니도 생생히 전해들었는데 정작 지하철공사나 경찰서·소방서는 모르고 있었다. 그해 여름에는 초강력 태풍 매미가 강원도·경상도를 강타했다. 전국적으로 130여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수재민이 발생했고 5조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봤다. 관련 당국과 기관 간 유기적인 협조가 부족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비판과 함께 국가재난망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됐다.

 우리의 국가재난 대응시스템은 세계 최고 통신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주먹구구식이었다. 재난을 담당하는 기관마다 다른 통신망을 사용해왔다. 주파수 대역도 서로 다르고 통신방식도 같지 않았다. 아직도 어떤 곳은 아날로그 TRS를, 어떤 곳은 디지털 TRS를, 또 어떤 곳은 VHS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제각기 다른 통신을 이용하다보니 재난 발생 시 경찰과 군 간에, 소방서와 경찰 간에, 지하철과 소방서 간에 도통 정보교환이 안 된다. 지휘계통도 제멋대로다. 총괄 지휘를 어디서, 누가 해야 하는지조차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게 아니다 싶어 소방방재청을 신설했지만 아직까지 통합지휘망이 없어 별무소용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3년간 국가재난망 구축이 지연되는 또 다른 재난을 겪어야 했다. 재난·재해 관련 정부부처 모임을 결성하는 데 몇 개월, 어떤 방식을 채택할 것인지를 놓고 또 수개월이 걸렸다. 어렵사리 테트라방식의 통합망이 선정됐지만 또 한번 국내 무전기 업계의 경쟁력 저하 논란과 기존 아날로그 TRS망과 연계 주장 등으로 시범사업이 1년이나 지연됐다. 그 사이 우리는 또 한번 어처구니없는 인재를 겪어야 했다. 지난해 영동지역 산불로 낙산사가 송두리째 불타버렸다. 낙산사 화재의 원인은 군경 간 정보교환과 통합지휘체계 부재가 큰 원인이었다. 타고 남은 불씨를 제대로 진압하지 못해 2차 산불이 낙산사 일대로 번졌기 때문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낙산사 주변의 소나무다. 소나무는 송진 때문에 불에 잘 타는데다 속불도 쉽게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낙산사는 소나무로 병풍을 쳤으며 화재에 대비한 소화장치도 구비하지 않았다. 산사 주변 산림관리에서 산림청과 산사 그리고 소방방재청 간 소통이 부재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듯 국가재난망이 재난기관들 간 지식공유와 예방, 사후 대처에서 긴밀한 협조를 이끌어내기를 기대해본다.

 유성호 논설위원@전자신문, sh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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