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글로벌화와 정보화의 급진전으로 하나의 시장이 됐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물자와 인력, 서비스가 국경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경제 전쟁터로 변한 것이다. 군사전쟁은 국가가 주도하지만 경제전쟁은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기업이 중심이 된다.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핵심 기술을 훔치는 산업스파이전 또한 경쟁이 있는 한 필연적인 현상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산업스파이는 21세기 가장 큰 산업 중 하나가 되고 정보전쟁과 경제스파이가 이 세기를 특징지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는 스파이다. 오늘날 산업스파이로 인해 고심하지 않는 나라가 없고 국가안보 차원에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에 이어 21세기에는 IT기술력으로 세계 정보사회를 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IT산업은 수출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무역수지 흑자의 절대적인 기반이 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 IT기술은 각국 기업의 선망의 대상이 됐으며 또한 산업스파이의 목표물이 되고 있다. 최근 3년간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산업스파이 사건은 61건으로 피해 예방액만 무려 82조원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IT 분야에서 발견된 게 45건으로 전체 74%를 차지한다. 유출 대상국 또한 미국·일본·중국·대만 등 선후진국이 망라돼 있다.
그러나 알려진 첨단기술 유출 사건은 빙산의 일각으로, 기술 유출에 따른 국부 손실은 추정조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정보화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국가와 기업의 핵심기술을 너무나도 쉽게 빼낼 수 있는 교묘하고도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업무의 편리성과 효율성에 치중한 인터넷 기반의 업무환경과 넘쳐나는 팩스·프린터·고속복사기, 누구나 소지하고 있는 카메라폰 등의 사용은 정보유출이 너무나 쉽도록 만들었다. 확산되는 휴대형 저장매체들은 기업 핵심정보를 다 저장할 수 있는 대용량이면서도 소형이어서 특수 보안장비 없이는 기술유출 사실을 발견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보호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부족하다. 기술보호 책임이 있는 임직원과 퇴직자가 대부분의 기술유출 사건에 관여돼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술보호 책임자인 기업 경영자의 인식과 실천의지가 부족하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무한경쟁 환경에서 기업의 필승 무기는 기술개발이다. 그러나 사력(社力)을 다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보호하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기술보호에 대한 무관심은 경영자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업 특성에 맞는 기술보호 규정 제정, 외국 진출 시 기술보호 대책 마련, 조직이나 전담직원 배치 등 기술개발에 버금가는 노력과 실천의지를 보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전직 보장과 직급 상승뿐 아니라 엄청난 특혜를 받을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첨단 기술정보다. 기업과 근로자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점을 감안하면 첨단기술 보호와 내부고객 만족도 간 상관관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첨단기술 개발자와 관리자에 대한 적정한 보상과 인사 정책 및 퇴직자 관리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공사를 구분하는 윤리의식과 직업관, 국가관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첨단기술은 국력의 기반이며 기업 경쟁력과 영속성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이를 부정하게 취득해 무임승차하려는 산업스파이전은 경쟁이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정부의 기술보호 제도와 정책, 경영자의 인식 전환과 실천의지, 근로자의 직업윤리와 책임의식 등이 어우러질 때 국력과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근로자 삶의 질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
김선배 한국정보통신수출진흥센터 원장 sbkim@i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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