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업이 참가하는 해외 IT경연장에 가보면 뿌듯함을 느낀다. 한국 기업들의 눈부신 활약상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IT한국의 진면목을, 세계 속의 한국을 우리 기업을 통해 본다. 이건 누가 뭐라 해도 주체할 수 없는 희열이다.
새해 벽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는 우리 기업의 ‘위대성’을 잘 설명해주었다. 우리 기업이 내놓은 신기술과 신제품을 보지 않고는 세계 IT산업 현주소와 신경향을 파악할 수 없는 정도가 된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몇년 전만 해도 들러리나 다름없었다. 그때는 세계 유수 기업이 뽐내는 전시회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았던 시절이다. 그러나 이제는 확 달라졌다.
어디 그뿐인가. 바르셀로나의 3GSM월드콩그레스에서도 우리나라 휴대폰업체들이 이른바 ‘주름’을 잡았단다. 우리나라에 6개의 금메달을 안겨준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무선통신기술로 무장한 삼성관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전언이다. 어디를 가나 좀 과장하면 한국기업관을 둘러보고 나면 더는 볼 게 없다는 평가다. 며칠 후에 독일에서 열리는 하노버 세빗에서는 우리 기업이 IT한국의 위상을 또 한번 뽐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세계 기업들에 비상령이 내려진 상태다. 우리의 메달박스인 쇼트트랙처럼 선진국의 견제 대상으로 지목된 것이다. 이들은 합종과 연횡으로 한국기업을 타도할 비책을 강구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서 최후의 승리자가 누가 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아니 IT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승자가 있을 수 없다. 오늘의 승자가 하루아침에 패자로 전락하기 일쑤다. 오죽하면 반도체 신화를 일군 인텔의 폴 오텔리니 CEO가 CES에서 “인텔은 더는 반도체회사가 아닌 가전회사”라고 말했겠는가. 이는 혁신을 실천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그런데 눈을 국내로 돌리면 너무 한가하고 한심하다. 해외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숨가쁜 기술전쟁을 벌이느라 악전고투하고 있는데 국내 일각에서는 소모전으로 날 새는 줄 모른다.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세계적 IT 테스트베드로서의 한국 위상에 어느새 금이 가고 있다. 기업이 아무리 위기가 몰려온다고 외쳐봐도 ‘쇠귀에 경 읽기’다. 이래서야 어디 혁신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겠는가.
장관이 바뀌었다. 그 중의 일부는 내정자 신분이기는 하지만 과학기술과 산업 전반, IT와 문화 콘텐츠, 혁신을 아우르는 장관까지 연이어 임명됐다.
참여정부의 최대의 화두는 ‘혁신’이다. 혁신은 국가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그래서 정부는 혁신대회까지 열어 정책적 경쟁력을 확산해나가고 있다. 특히 세계화·첨단화로 치닫는 국제경쟁 환경에서 혁신 없이는 성공적인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내일을 향해 누가 먼저 쏘느냐도 중요하지만 올해 쏜 화살이 중단 없이 세계로 날아갈 수 있느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속도경쟁에서 밀리면 끝장이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IT 관련 장관들은 시대적 명제인 혁신의 실체를 바로 알고 바로 실천해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경쟁의 역리(逆理) 현상’을 차단해야겠다. 다시 말해 ‘창조적 경영론’을 혁신정책에 적용해 한국 IT산업의 세계적 진운을 열어달라는 주문이다.
만물을 부르는 봄이다. 우리 기업에도 올해는 마치 얼음장을 뚫고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소리처럼 신선한 기운이 일게 하자.
박현태 <본지 편집인> ht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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