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규(33).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 개발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다. 온라인 게임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라그나로크’를 만들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으며, 그의 두 번째 온라인 작품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김학규’가 만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해외 업체들이 천문학적 금액을 제시하며 달려들고있다.
창문 하나 없는 지하실에서 라면만 먹으며 지낸 고난의 세월이 있었지만 이젠 게임의 미래를 예견하며 개발의 최전선을 달리는 진정한 ‘스타’가 바로 김학규 IMC게임즈 사장이다.
“패키지란 느낌을 주는 데 주력했습니다. 기존의 MMORPG를 탈피하기 위해 고민도 많이 했어요. 조금이라도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생존을 위한 선택입니다.”
김 사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해 정신없이 바쁜 와중이었고 “스트레스로 인해 토할 것 같다”며 가끔 배를 움켜 잡았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아직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은 그였지만 이 자리까지 오기에 겪은 굴곡이 그를 지탱하는 것 같았다.
# 초등학교 때 게임 개발 결심
오락실은 사실상 그의 집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동네 오락실을 다녔고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게임에 푹 빠져 지냈다. 다른 남자 애들이 50원짜리 오락에서 목숨을 걸었던 것과 달리 김 사장은 애플컴퓨터와 MSX 컴퓨터를 모두 장만해 PC게임도 함께 즐겼다. 스스로 게임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이때부터 생겼다.
하나의 게임을 홀로 만들기엔 부족했지만 잡지 등에 공개된 소스를 바탕으로 타이틀을 이리저리 바꾸는 실력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딱히 배운적은 없었고 오로지 독학으로 깨우쳐 나갔다.
본격적으로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대학교에 압학하면서 부터다. 하이텔의 게임제작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현재 대한민국 게임 산업을 주도하는 미래의 주역들을 많이 만났다. 그 사람들이 바로 김동건, 이현기, 김세용, 최연규, 조연기, 신현우, 김건 등 현재 국내 게임개발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우리 손으로 우리 게임 만들어 보자’는 열정 하나로 팀을 구성해 93년부터 게임 개발에나섰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리크니스‘였다. 닌텐도의 ‘슈퍼마리오’에 영향을 받은 이 게임은 그림풍을 다르게 만들고 ‘악마성’의 요소를 추가해 색다른 게임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김학규 사장의 병역 문제로 인해 프로토 타입까지만 완성되고 팀은 곧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최연규 씨와 조연기 씨는 소프트맥스에 입사했고 그곳에서 ‘리크니스’를 완성해 선보이기도 했다.
김 사장은 병특으로 군대 문제를 해결했고 다시 팀원을 모아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 만든 작품이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라스 더 원더러‘다. ‘그라비티’라는 명칭은 94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창문조차 없었던 지하실에서 꿈만 먹고 일했지만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주역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 ‘악튜러스’로 발판 마련
휴학을 더 이상 연장하지 못해 일단 학교로 복학한 김 사장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지새웠다. 게임으로 푼돈을 벌기도 했으나 직업으로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임으로 먹고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시기였고 졸업도 해야했기에 일년 동안은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개미맨 2’를 만들어 달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또 알고 지냈던 사람이 만든 ‘창세기전’으로 자극을 받아 결국 이 길을 택하게 됐다고 할 수 있죠.”
‘창세기전 2’가 승승장구하면서 국내 게임시장은 용틀임을 시작했고 김 사장은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예전부터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되든 그런 게임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덤벼들었다.
홀로 감당하기엔 규모가 적지 않아 당시 손노리의 서관희(현 엔트리브 이사) 씨와 의견 일치를 보고 98년부터 공동 개발에 돌입했다. 손노리에서 배경과 그래픽을 담당하고 나머지 모든 부분은 그라비티에서 맡았다.
처음 예상과는 달리 프로젝트는 덩치가 계속 커졌고 세간의 관심은 나날이 높아졌다. ‘라그나로크’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악튜러스’는 이렇게 태어났고 2000년 4월에 그라비티를 정식 법인으로 등록시켰다.
# 공멸 막기 위해 전진한다
김정률 회장을 만난 것도 ‘악튜러스’를 한창 만들던 시기였다. 김 회장이 회사에 투자하면서 그라비티에 취임했다. 그리고 그는 개발에서 경영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됐다. 스스로 회사를 나오기까지 여러 가지 일을 겪었지만 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미 떠난 회사고 남의 회사이기 때문에 지금 언급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제 IMC게임즈가 세계적인 게임 스튜디오가 되는 것만이 목표라며 화제를 돌렸다.
“ ‘그라나도 에스파다’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싶어요. 비슷비슷한 게임에서 벗어나 유저에게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MMORPG는 공멸하고 말 것입니다.끊임없는 도전과 연구, 실험 정신은 창작자의 기본입니다.”
게임은 항상 발전돼야 하고 개발자는 미래를 봐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3년 후를 예상하고 기획했지만 최근 추세를 보면 5년 이상을 내다보고 게임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막상 오픈 베타 테스트에 직면하면 특별한 차별화나 신선한 시스템으로 간주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박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고 중박만 나면 좋겠다”며 ‘그라나도 에스파다’에 대한 기대감을 밝히면서도 “3년을 기다려 준 유저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또 “다소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게임을 즐겨주면 분명 즐거운 플레이 시간이 될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김성진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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