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그리고 소설 등 창작 세계에서 상상 과학의 가능성은 끝없이 펼쳐지곤 한다. 가능성이 많은 만큼 종류도 많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SF(상상 과학)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다. 게임에서 영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소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창작 분야에서 상상 과학 작품들은 다채로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하지만 이제까지 필자가 소개했던-그리고 앞으로 소개할- 상상 과학 작품들의 이름을 보다 보면 “에? 그것도 SF야?”라며 반문을 하는 작품도 있다. 왜냐면 독자들은 SF라는 것은 과학을 소재로 한 작품이고 뭔가 심오한 진리를 담고 복잡한 해설이 첨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상상 과학이 심오한 과학 이론을 담고 과학적 발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상상 과학은 쉬운 거고 재미로 즐기는 거라고 하지 않았냐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말도 맞다. 상상 과학은 재미를 위한 창작물이다. 과학 이론 같은 건 전혀 몰라도 지장 없고, 읽거나 볼 때마다 E=MC² 같은 걸 떠올리며 머리 싸맬 필요도 없다.
심각하게 모순되는 말이긴 해도 그것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왜냐면, 필자가 말하는 상상 과학은 워낙 넓고 다양해서 그만큼 다양한 종류가 있고, 그 중에는 머리를 싸매고 파고들어야 하는 것부터 화장실에서 고민(?) 중에 정 볼게 없을 때 가볍게 펼쳐볼 수 있는 것까지 무진장 많은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상상과학을 분류하기전 잠깐 복습을 해 보자. 이 연재의 첫 머리에 필자는 상상 과학은, ‘과학을 통해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상상 과학이란 다음의 특성을 갖고 있다.
1. 과학적인 가능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2. 상상으로 창조된 이야기다.
둘 중 어느 게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2번이다. 과학적인 설정은 굳이 상상 과학이 아니라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전 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스티븐 호킹 박사의 ‘시간의 역사’는 훌륭한 과학 이론과 설정을 갖고 우주의 가능성을 논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것을 상상 과학 작품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이 작품에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상상 과학은 이야기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스타크래프트’에서 ‘스타워즈’, ‘우주 전쟁’이나 ‘건담’, ‘아톰’을 가리지 않고 상상 과학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작품에 이 두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1번은 결코 빠지지 않고 그 정도에 따라 상상과학이 분류된다.
‘나는 과학 이론 아니면 살 수 없어. 상상 과학이라면 뭔가 배울 가치가 있어야지.’라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역시 정통파 SF라고 불리는 ‘하드 SF’를 찾아야 한다. 소설로는 아이작 아시모프나 아서 C 클라크, 그리고 로버트 하인라인 같은 대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영화로 말하자면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아서 C 클라크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2001년스페이스 오딧세이’는 너무도 현실적이다. 영화를 보면 셔틀여객기에서 스튜어디스는 바지로 된 옷을 입고 머리를 온통 싸맨 채 부드러운 양말만 신고 무슨 평행봉 위를 걸어가듯 조심조심 이동해서, 잠든 손님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만년필을 공중에서 집어 넣어준다.
불과 1분이 될까 말까한 짧은 장면에서 우리는 ‘무중력 상태에서는 물건이 떠 있고, 머리나 치마는 휘날릴 수 있어 방해가 되고,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이 작품 이후 공중에 물건이 뜬 장면은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하드 SF’는 과학적 설정을 최대한 정확히 살리는 한편, 오직 과학 만을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테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에서는 오프닝부터 로봇 공학 3원칙이라는 아시모프 만의 법칙을 띄워주고 이야기 전체를 바로 ‘로봇 공학 3원칙’이라는 과학 설정에 맞춰 사건을 해결한다(영화판 ‘아이, 로봇’은 액션으로 사건을 해결해 하드SF와 조금 거리가 있다).
말하자면 ‘하드SF’는 과학적 사실이 이야기를 이끄는 소재로 사용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과학 설정에서 생각지 못한 허점으로 문제가 발생하지만 결국 과학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스토리가 ‘하드SF’의 기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하드SF’를 완성하려면 과학적 지식 만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사고가 필요하고 독자도 작품을 읽을 때 고심할 필요가 있다(그런 면에서 유전공학으로 공룡이 탄생하고, 과학적인 이론에 따라 공룡 공원이라는 낙원이 무너지는 과정을 다룬 ‘쥬라기 공원’ 역시 하드SF라 할 수 있다).
‘하드 SF’의 정반대에 서 있는 것은 물론 팬터지겠지만 상상 과학에 속한 것 중 속칭 ‘사이언스 팬터지(과학적 팬터지)’라 부르는 부류가 있다. 처음 ‘사이언스 팬터지’는 줄 베른의 ‘지구속 여행’ ‘해저 2만리’,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 등을 부를 때 사용했던 명칭이지만, 현재는 팬터지 세계를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나가려는 작품을 가리키는데 자주 사용된다.
이를테면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지팡이는 힘이 깃든 언어에 영향을 받아 진동하기 시작하고 에테르의 대기에 강한 영향을 주어 분자의 에너지를 증가시켰다. 급격하게 증가한 에너지가 낳은 불길은 마법사의 동작에 따라 거대한 구체를…’ 같은 식으로 마법 자체를 과학이나 공식처럼 만드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그 밖에도 마법이 인간의 힘이기보다는 에너지원으로서 등장하는 ‘란스’ 같은 작품 역시 이런 부류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마법이 나오는 것을 상상 과학이라 부르는 데 다소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겠지만, 그것은 일종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면 처음 마법 역시 과학의 일종으로서 탄생했고, 어쩌면 과학의 하나로 완성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와 관련해 마법 과학이 발전한 세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품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귀족 탐정 다아시 경의 활약을 그린 걸작 ‘셰르부르의 저주’가 있다).상상 과학 세계에서는 ‘지극히 발달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같다.’는 말이 존재한다. 말 그대로 과학이 마법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과거의 마법사들이 화약이나 나침반 같은 과학 기술로 사람들을 현혹했듯이…).
에테르가 실제로 있고(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도 없다. 존재한다 해도 세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을 뿐이다), 특정한 촉매와 음파(혹은 정신파)에 의해서 에테르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위의 사례처럼 과학을 통해 마법을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처럼 공식화되고 과학화된 마법 체제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활용한다면 그것은 ‘하드 사이언스 팬터지’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예를들어 ‘슬레이어즈(마법소녀 리나)’ 는 세계를 이루고 있는 질서로서의 마법 체제를 통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해결한다는 면에서 ‘하드 사이언스 팬터지’ 후보로서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이런 작품이 먼치킨 팬터지의 전형으로 불리는 것은 개인적으로 정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의 주인공 리나 임버스는 질서에서 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마족들과 대결을 벌이곤 하는데, 그녀는 분노 게이지를 통해 파워업하거나 변신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질서(즉 마법 규칙)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판단력으로 상황을 헤쳐 나간다.
생리로 인해 마법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트롤과 싸울 때, 그들의 뛰어난 회복 능력을 반대로 작용하게 하여 작은 상처 만으로 간단히 쓰러뜨리는 장면에서는 작가의 탁월한 과학적 상상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마법의 상호 간섭 등 일반적인 팬터지에서 볼 수 없는 ‘마법의 과학적 공식화’가 철저하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여러면에서 연구 가치가 있다.
우주를 무대로 한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어떤 점에서 ‘슬레이어즈’의 느낌을 갖게 된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사실 ‘슬레이어즈’ 자체가 본래 SF 컨셉에서 탄생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드 SF’와 ‘사이언스 팬터지’는 서로 극단적인 관계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 밖에도 상상 과학에는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스팀 펑크’, 그리고 ‘사이버 펑크’나 ‘뉴웨이브’ 등 매우 다채로운 갈래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선 ‘매우 어려운 것’과 ‘척 보기엔 팬터지’라는 것이 있다는 정도 만을 알아두자. 그것 만으로 일단 상상 과학의 양 극단을 안 셈이니까.SF 칼럼리스트. 게임아카데미에서 SF 소재론을 강의 중이며, 띵 소프트에서 스토리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스페이스 판타지(http:www.joysf.com)란 팬 페이지로 유명하다.
<전홍식 pyodogi@sfw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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