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야수

1995년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 이후 한국 느와르 중에서 최고의 상업적 재미와 영화적 완성도를 가진 김성수 감독의 ‘야수’는 권상우 유지태 두 스타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전형적인 스타 버디 무비이다. 하지만 역동적 상상력으로 가득찬 신인 감독 김성수에 의해 새로운 패기와 에너지를 획득한다.

김성수는 가고 김성수가 왔다? ‘비트’ ‘태양은 없다’의 김성수 감독의 시대는 ‘무사’ ‘영어완전정복’의 비참한 소멸 과정을 거친 후 이제 완전히 저물었고, ‘야수’의 새로운 김성수 감독이 강호를 정복한다.‘야수’는 패기만만한 신인 감독 김성수의 출사표이면서, 동시에 ‘말죽거리잔혹사’의 권상우를 확실하게 차세대 스타 군단에 올려 놓는 반석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꽉 짜여진 내러티브, 무엇보다 소재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캐릭터에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흐름의 완급을 탁월하게 조절하는 김성수 감독의 빼어난 연출력이 돋보인다. 물론 감각적인 편집, 클로즈업을 빈번하게 활용하면서 캐릭터의 내적 사유세계로 감정을 이입시키는 것을 용이하게 만드는 카메라 등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권상우 유지태 손병호, 이 세 배우의 빼어난 연기력과 맞물리면서 ‘야수’만의 야성미를 부각시킨다.

배우 중에서 아쉬운 것은 유지태다. 그는 ‘올드보이’의 잔상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몸무게를 10kg이나 찌우면서 거대 조직과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검사 오진우 역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지만, 권상우나 손병호가 펼쳐내는 아우라에는 미치지 못한다.

‘야수’는 어찌보면 권상우를 위한 영화다. 더북하게 머리를 기르고 새까맣게 탄 얼굴로 법보다는 주먹이 더 가까운 경찰 장도영 역은 권상우를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공공의 적’의 능글능글한 설경구의 연기와는 또 다르게 여성 관객들에게는 모성애를 불러 일으키면서 남성 관객들에게는 가슴 한 쪽에 숨어있는 야성적 본능과 의협심을 자극시키는 장도영은 나무랄 데 없이 스타 탄생을 위해 창조된 역할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새로운 중고 스타 손병호를 확실하게 스타덤에 안착시켰다. 그는 ‘알 포인트’에서 이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연기력의 깊이를 표현한 바 있지만, 서방파 두목 김태촌을 연상시키는 유강진 역을 완벽하게 재창조한다.

거대 조폭의 두목이면서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에는 자선사업을 하고 선교활동을 하며 갱생의 삶을 사는 것처럼 위장된 제스처를 쓰지만 뒤로는 자신을 배반한 조직원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정적을 위협하며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조폭 두목을 소름끼치게 표현한다.

‘야수’는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대중적 재미와 캐릭터의 강렬한 부딪침으로 거대한 상업적 자장을 형성시킨다. 파멸인줄 알면서도 자신의 삶의 벼랑까지 달려가는 느와르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닮고 있는 동시에 비장미 가득찬 남성적 향기가 화면을 뒤덮고 있다.

김성수 감독의 새로움은 감정의 상승 곡선을 가능케 하는 급작스러운 줌인 쇼트나 절대 목표물에서 시선을 떼지 않게 만드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대중적이며 낯익은 상업적 공식을 최대한 피해나간다. 거대 제작비가 투입된 상업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의 독창적 영화 문법을 창조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안간힘이 이 영화에 생생한 활기를 부여하고 있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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