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CT가 미래다]해외선진 CT 현장을 가다(1)유럽-유럽은 CT 전쟁중

 유럽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지역이다. 유럽연합(EU)에 문화재로 등록된 건축 유물이 20만여개에 달하고 그 외에 역사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 건축 유물이 250만개나 된다. EU에서 문화재 분야 활동인구는 30만여명이고 문화재와 연관된 문화상품 활동인구는 거의 100만명에 이른다. 유럽의 문화콘텐츠 산업도 이같은 역사적 토대에서 자라났다.

◇EU의 다양한 문화 지원 정책=유럽의 문화콘텐츠산업 지원정책은 EU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교육·문화국(Education and Culture Directorate-General)에서 총괄한다. 일찍이 EU집행위 교육·문화국은 지난 2000년 유럽 지역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서 문화 경쟁력을 공고히 한다는 ‘문화 2000(Culture 2000)’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지난 2004년 ‘문화 2000’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받은 문화산업 프로젝트는 모두 233개. 총 3200만 유로(한화 383억원)의 지원금이 투입됐다. 놀라운 점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113개의 프로젝트가 문화원형 디지털화나 사이버 박물관 설립과 같은 문화유산 관련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유럽인들의 인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연합은 또 관계산업 전문가들의 연수, 영화제작회사의 영화작품 및 시청각 프로그램의 유통과 배급을 강화해 지역 영화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로 지난 1991년부터 10년간 미디어 프로그램(MEDIA PROGRAMME)이라는 이름의 지원 사업을 가동한 데 이어 2001년부터 올해까지 기존 사업을 발전시킨 미디어 플러스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4억 유로(4799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제작과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유럽 이사회가 1988년에 창설한 유럽 영상문화 지원기금(Eurimages)이 유럽영상 산업의 공동 제작·배급·전시에 있어 회원국간 교류를 통해 영상산업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등 유럽연합은 문화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술은 콘텐츠를 뒷받침한다=시선을 문화기술(CT)로 돌려보면 우리와의 확실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우리가 그동안 기술 개발 자체에 치중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지만 유럽에서는 그 기술을 활용해 어떤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한다는 것이다.

디지털미디어와 통신기술의 접목을 다루는 영국 3C리서치의 피터 혼 CEO는 “우리에게 있어 관심사는 어떤 기술을 활용해야만 콘텐츠를 원활하게 제작하고 유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라며 “기술은 콘텐츠를 윤택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럽의 관련 업체와 기관의 기술개발 사업에는 확실한 목적이 존재했다. 무선망을 통한 전송효율 극대화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는 ‘다카르 랠리처럼 극한의 지역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어떻게 하면 무선망을 통해 저비용 구조로 중계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동영상 속의 동작을 캡처해 애니메이션 속의 동작으로 자동변환해주는 솔루션 역시 일반적인 모션캡처처럼 쓸데없이 과중한 작업을 배제하고 애니메이션에 필요한 최소한의 캡처만을 진행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하고 있다. 기술 개발 자체에 집중해서 필요없는 기능들까지 추가함으로써 실제 업계에서 활용하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비싼 솔루션이 탄생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와 크게 다른 부분이다.

유럽은 또 문화와 기술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종사자들이 함께 만나는 장을 마련해주는 데 주력한다. 또 좋은 프로젝트가 탄생하면 아낌없는 지원을 펼치기 때문에 새로운 프로젝트 제안이 끊이질 않고 있으며 IT 분야 대기업들이 직접 참여하고 프로젝트 결과물을 사업에 활용하는 형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따로 또 같이=같은 유럽이라도 지역에 따라, 해당 업체 및 기관에 따라 ‘콘텐츠를 위한 기술’에 대한 기본 인식은 비슷하지만 이를 효율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3C리서치와 SEMM 등 주로 영국 남부 지역에 있는 업체 및 기관은 철저하게 ‘클러스터’ 형태로 운영된다. 문화콘텐츠 업체와 기술 업체간 ‘만남의 장’을 마련해주는데 주력한다는 의미다. 이들 사이에 끊임없이 네트워킹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고품질 연계 프로젝트가 등장하기 때문에 철저한 심사를 거쳐 해당 프로젝트를 지원만 하면 된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음악과 과학의 만남을 표방하는 프랑스의 아이알캠은 유명 작곡가 출신이 설립한 곳 답게 일단 예술적 가치를 먼저 추구한다. ‘어떤 기술을 개발하면 이 음악을 최고로 멋지게 들려줄 수 있을 것인가’, ‘어떤 기술을 개발하면 음악 제작이 좀 더 편리해질까’라며 예술적 필요를 우선시하는 기술 개발 프로세스를 밟는다.

반면, 독일의 렌더링 솔루션 전문 업체 멘탈이미지는 항상 ‘우리의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경우다. 단순히 애니메이션 제작사 등의 요청에 의해 기술을 개발하는 대신 먼저 기술을 인터넷 사이트에서의 실시간 렌더링에 접목시킨 후 이를 대형 할인마트나 공항, 항만 등에 제안했다. 이처럼 남들보다 먼저 비전을 갖고 미래에 필요할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현재 관련 분야에서 기술격차를 벌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한가지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역시 ‘우리가 이 기술을 적용하면 콘텐츠가 얼마나 윤택해질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고민이 오늘날 유럽 지역 문화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

◆인터뷰-설기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기술인력본부장 snow@kocca.or.kr

현재는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인 문화기술(CT) 개념을 안고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의 최전선인 영국을 비롯한 유럽 탐방을 떠나는 마음은 걱정과 기대의 묘한 쌍곡선 상에 서 있었다. 유럽이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내용들이 있을지. 세계 문화산업을 이끄는 미국에서 볼 수 없는 유럽 나름의 특성을 찾아낼 수 있을지. 우리의 CT 미래사업과 연계할 것이 있을지. 개인적으로는 언어나 문화가 다른 3개국, 6개 기관을 일주일이라는 단기간에 방문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앞섰다.

직접 다녀보니 국가별로 특성이 약간 달랐다. 영국은 철저하게 지역이나 산업의 영역별로 클러스터를 이뤄서 상호 시너지를 내거나 작은 역량들을 집결해 경쟁력을 확보하려했다. 프랑스는 예술의 종주국답게 예술과 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기술개발의 나아갈 길을 명확히 하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독일은 철저하게 자신들이 경쟁력 있는 기술적 바탕을 활용해 문화산업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중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클러스터형 기술개발에 대한 모형이 우선 와 닿았다. 철저히 대학이나 연구소가 기업 혹은 프로젝트와 연계해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그에 따르는 성과를 콘텐츠 사업으로 증빙하거나 시험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특히 관련 기업들이 자신만의 기술적 특성과 노하우를 어떻게 다양하게 산업에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나의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 기술을 다양한 산업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접점을 제시하면서 문화기술에 의한 산업영역 확산을 이뤄가는 모습이 우리의 기술개발 방향성을 제시해줬다.

또 예술적 문화적 관점을 향상시키거나 산업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기술 중심의 기술 개발이 아니라 예술가나 문화적 특성을 살려 나가기 위한 기술개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스스로 강조하는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그들은 클러스터를 만들 때 단순히 관련기업의 조합이나 희망기업들의 입주에 의해 기반을 형성하지 않고 철저하게 콘텐츠 창작이나 기술개발과 관련해 동일한 방향성을 가진 기업이나 인력들의 상호 시너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아가 유럽연합(EU)이 중심에서 유럽 각국이 가진 동일한 문제에 대한 기술개발을 공동추진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탐방을 마친 느낌은 향후 각국이나 기관들이 가진 기술개발 방향에 대해 보다 정밀하게 조사하고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방향이 어떻게 구상돼야 할지를 점검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이 가진 기술개발과제나 연구방안을 우리나라와의 공동 프로젝트로 연계해 기술적인 노하우나 협력방안을 배우고 기술의 이전이나 인력 양성 교류의 틀을 마련할 예정이다. 유럽이 문화적 자긍심과 지역의 공동노력으로 미국에 대응해 가는 모습을 보며 향후 우리 문화산업이나 기술개발이 어떻게 국제적인 경쟁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하는지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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