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정보기술(IT)이 그 나라의 경제 수준을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달 부산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도 바로 IT와 미래의 경제 패러다임이었다.
IT 및 일부 첨단산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절대적이다. 올 10월 말까지 수출액은 2484억달러에 이르렀는데 이를 주도한 견인차는 반도체와 휴대폰·자동차다. 반도체가 251억달러, 자동차가 235억달러, 휴대폰이 226억달러어치 수출됐으니 이들 셋을 합치면 전체 수출액의 40% 가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일부 산업에 편중되는 건 국가 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에는 도리어 적신호로 이어질 수 있다. 수출 증가가 곧 고용 증가와 국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노동의 종말’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최근의 글에서 20년 후에 산업구조가 급격히 변하고 노동이 해체되면서 현재 만드는 생산품에 드는 노동력의 5%만 필요한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컴퓨터를 앞세워 근무하는 화이트 칼라의 실업이 급속히 늘어나 중산층 몰락이라는 새로운 암흑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IT 분야의 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장기적인 발전을 이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문화콘텐츠 육성밖에 없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나 통신과 방송의 융합 등 최근 트렌드를 보면 결국 디지털용기에 무엇을 채울 것인지의 콘텐츠 문제로 귀결된다.
문화콘텐츠 산업 환경은 그동안의 큰 목소리에 비해 여전히 열악하기 짝이 없다. IT 하드웨어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콘텐츠 영역은 내세울 만한 기업 하나 없다. IT산업에서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8%다. 대표적인 예가 모바일 시장이다. 이동전화 가입자 3800만명, 모바일 콘텐츠 시장 규모 3조원 시대에 콘텐츠 공급자(CP)의 몫은 약 25% 수준인 8000억원에 불과하다. 아무리 부가가치가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해 봤자 현재 통신시장 구조에서 콘텐츠산업은 종속적 위치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미국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최근 귀국한 로버트 김이 어느 상공인 초청 강연회에서 한 주장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는 “한국은 컴퓨터로 좋은 정보를 교류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 진정한 IT강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의 문화콘텐츠와 이를 제공하는 시장구조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제는 국가 성장동력의 중심을 IT강국에서 콘텐츠 강국으로 돌리는 구체적 정책이 절실하다. 두 영역은 별개가 아니고 동전의 양면 같은만큼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콘텐츠 영역을 활성화함으로써 균형 잡힌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의 의지를 담은 정책의 활성화다. 젊은 인재들이 통신회사나 전자회사 대신 크고 작은 콘텐츠 제작회사로 모일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이 구현돼야 한다.
우리는 한동안 휘몰아쳤던 한류열풍의 경험에서 콘텐츠의 힘을 경험한 바 있다. 이 힘을 산업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개념부터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콘텐츠 공급자(provider)라는 용어를 써왔다. 엄격한 의미에서 이는 잘못된 개념이다. 콘텐츠는 제공하는 것 이전에 만들어져야 하므로 오히려 제작자(creator)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콘텐츠 제작자 중심의 정책은 장기적인 비전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정부부처, 특히 문화관광부는 콘텐츠 활성화 정책의 핵심부처로서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 과정도 결국 개인화된 통신·방송 서비스 및 콘텐츠의 제공 확대로 귀결되므로 로드맵을 그려야 하는 문화부는 통합적이고 구체적인 제도를 만들어 어떻게 IT산업에 제공할지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바로 콘텐츠 제작자 육성전략이다.
앞으로의 시장은 디지털 콘텐츠, 특히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중심으로 국가 간 또는 기업 간 경쟁·융합이 가속화될 것이므로 그 핵심인 디지털 콘텐츠 제작자들을 위한 정책이 시급하다. 이런 노력들 하나 하나가 모일 때 우리나라는 콘텐츠 강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날을 기대해 본다.
◆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dksung@ca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