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라는 개념마저 없었던 시절,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을 모시고 시작한 한국정보산업연합회(정산연)가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 정보기술(IT)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권태승(70) 정산연 상근부회장이 이달을 끝으로 공식 사임한다. 지난 85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정산연 전무이사로 취임, 20년 넘게 한국 IT업계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초대 회장인 정주영 회장과 이용태 삼보 회장을 거쳐 현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IT업계의 대표 인사들과 함께 정산연을 반석위에 올려놨다.
“정산연은 민간단체입니다. 구성원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존립 근거가 없습니다. 항상 깨어있을려고 노력했고 임직원들에게도 그렇게 주문했습니다. IT업계의 권익 보호와 수익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혁신에 혁신을 거듭했습니다.”
그는 불 같은 성격인데다 워커홀릭이어서 웬만한 사람은 그와 보조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는 가정을 망가뜨리지 않는 범위에서는 업무 중심으로 살아야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철학은 정산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는 정산연에 몸담으면서 정보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는 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86년 소프트웨어라는 개념마저 없었던 시절 ‘소프트웨어 시찰단’을 만들어 일본에 파견한다. 30여명의 국내 기술자들이 대상이었다.
“기술자들에게 일본을 방문하면 쓰레기통을 뒤지고 책상에서 메모라도 집어오라고 주문했습니다. 소프트웨어 불모지인 한국이 당시 소프트웨어 강국이었던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술자 한 명이 쓰레기통을 뒤지다 걸려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은 이를 기반으로 태동했습니다.”
그의 기지는 97년 외환위기때도 빛을 발휘했다. 정산연과 서울 주요 지역에 ‘정보화로 위기를 극복하자’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위기 돌파를 시도했다. 외국계 기업들도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만든 기금이 30만 달러였다. 지금도 이 일은 회자되고 있다.
그는 정치권에도 정보화 마인드를 심었다. 97년 대선 당시 후보자 5명을 롯데호텔에 초청해 ‘정보화 정책 포럼’을 열어, 대통령 후보들에 ‘정보화’라는 단어를 각인시켰다. “아직도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후보자들이 모두 정보화 수석을 둘 것을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 점은 아쉽습니다. 정보 강국으로 갈려면 청와대에 정보화를 전담하는 조직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가 외환 위기를 넘고 정보화 강국으로 거듭나자 세계적인 IT 최고경영자(CEO)에게 한국을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그가 주축이 돼 만든 ‘CIO포럼’을 통해 방한한 IT업계 리더들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칼리 피오리나 전 HP 회장, 존 체임버스 시스코 회장 등에게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시켰다.
“CIO포럼은 전세계에서 한국과 미국밖에 없습니다. 세계적인 CEO들이 한국에 CIO 포럼이 있다는 말을 듣고 놀라더군요. 자기 물건을 사 줄 사람을 다 모아놨는데 안 올 CEO가 있겠습니다. CIO포럼은 CIO의 위상도 크게 높였습니다. 이 모임이 없었다면 CIO는 전산실장 정도의 역할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한국 IT의 미래인 대학생에게도 장을 마련했다. 지난 2003년 임베디드소프트웨어 공모대전을 만들어 우수한 대학생들을 발굴, 산업계와 대학을 연결하는 가교를 만들었다.
그에게 정산연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마치 원고를 읽듯 달변인 그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무겁게 입을 연 그는 “민간단체로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부 정책이 친 기술적, 친 기업적으로 변하도록 끊임없이 자극하고 대안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산연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는 앞으로 퇴진 CEO들의 모임인 프리CEO 멤버로 활동할 계획이다. “여생은 봉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전경련과 정산연 40년 활동을 통해 쌓은 노하우와 인맥을 활용해 벤처기업을 도울겁니다. 더 이상 욕심은 없습니다. 한국 IT 산업이 무럭무럭 커 갈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를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IT는 서비스로 발전합니다.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가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재계와 IT업계를 대표하며 살아 온 40년의 경험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전해왔다. 그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종교는 기독교다. 골프와 등산을 즐기며 주량은 소주 1병정도다.
김익종기자@전자신문, ij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