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정광화 원장 "남성의 틀에서 자신감이 무기였다"

 국내에서도 처음으로 여성과학기술인 정부출연연구기관장이 탄생했다. 지난 66년 첫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재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가 출범한 이래 만 39년 만의 경사다.

 국내 최초의 여성 유치 과학자로 지난 78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첫발을 디딘 정광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57)이 그 주인공. 27년간 한 우물을 파며 여성 과학기술계의 맏언니 격으로 활동해온 정 원장이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어 오던 과학기술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주역임을 자처하고 나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관장 도전 재수 끝 입성=정 원장은 2년 전 과학기술계에 크게 기여할 때가 됐다는 판단에 따라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직에 도전했으나 3배수 후보에도 들지 못하는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정 원장은 좌절하지 않고 재도전에 나서 결국 여성 최초로 정부 출연연구소 원장이 됐다.

 정 원장은 “한국에서 여성 과학기술자로 일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며 지난 27년간의 연구원 생활을 회고했다. “하지만 남성 중심의 견고한 과학기술계 풍토도 남보다 한발 앞서가는 지혜가 있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출연연이 여성 인력 자체를 잘 뽑지 않던 시절인 78년 7월 1일 한국 표준과학연구원에 국내 여성 유치과학자 1호로 들어온 인물이다.

 “당시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상의할 인물은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얼마 전 퇴직한 오세화 박사가 유일했습니다. 연구를 하고 싶어도(정 원장은 진공분야 전문가다),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지 정부지원도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반도체 등 첨단시설에 클린룸은 당연시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경공업 산업이 중심이었기에 진공장비가 크게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유학시절 생각하면 ‘눈물’=“아버지가 6선의 국회의원이었다고 하면 엄청나게 잘살 것이라는 선입관부터 갖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유학을 갈 비행기 요금이 없어 빚을 냈고, 매달 장학금의 절반인 150달러를 집으로 송금해야만 했으니까요.” 힘들었던 유학시절 이야기를 꺼내놓는 정 원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5년의 유학기간에 비행기요금이 없어 부모님을 단 한 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그때 처음 외로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가 뼈저리게 느꼈죠.”

 그런 아픔을 겪었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는 정 원장은 “당시 경성사범학교를 나와 신여성 대열에 계시던 어머니와 ‘나라가 살길은 과학기술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덕에 가족들이 이공계에 많이 진학할 수 있었다”며 “물리학이라는 ‘신이 만든 질서’의 아름다움에 빠져 물리학을 전공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교시절 말대꾸가 심해 주위 어른들로부터 ‘버릇없다’며 많은 꾸지람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가 감싸줬기 때문에 오늘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는 정 원장은 ‘시비’와 ‘호기심’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해야=정 원장이 보배처럼 아끼는 말은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는 성경구절이다.

 매사 성실하게 자신의 위치에 따라 주변 상황을 판단하고 적극 참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지난 93년 설립된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의 창립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당시 정 원장은 여성 과학기술인으로 쌍벽을 이루던 오세화 박사와 이화여대 이공주 교수 등과 상의해 여성과학기술인회를 만들었다. 오 박사가 1, 2대 회장, 정 원장이 3, 4대 회장을 맡아 이끌었다. 이 교수는 내년 1월부터 6대 회장을 맡을 예정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매몰되어 살아갑니다. 그만큼 시야를 좁게 가지는 것이죠. 여성과학기술인들이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단순히 돌을 쪼는 석수보다는 부처의 전당을 만드는 적극적인 석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림을 크게 그릴 줄 아는 정 원장이 표준과학연구원, 나아가 과학기술계의 그림을 어떻게 그려갈지 벌써 기대된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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