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문화콘텐츠 세계 경쟁, 이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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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외국의 선진 정책사례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경제교역 12위라는 국가 위상에 걸맞게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정책을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우리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노하우가 세계의 본이 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노하우는 단순히 숫자경쟁을 벌여야 하는 레드오션에서 경쟁이 제로에 가까운 새 시장 블루오션을 창출해낼 수 있는 핵심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평가받는 문화콘텐츠산업 부문에서 우리의 아이디어와 노하우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시장 선점의 기회 또한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문화콘텐츠진흥원은 설립 초기부터 외국의 주요 벤치마킹 대상이 되어 왔다. 가장 열심히 벤치마킹에 나섰던 나라가 중국인데, 초기에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진행됐으나 최근에는 각 성(省) 단위로, 또 부처 단위로 방문해 노하우 배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일본도 2∼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 초창기에는 일본의 경제산업성과 간헐적으로 교류하는 수준이었지만, 요즘엔 일본 문화청과 지방자치단체들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만도 예외가 아니어서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의원·대학·교육단체장 등 다양한 사람이 다녀갔고, 말레이시아·홍콩·싱가포르·호주 등에서도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중국 문화부는 지난해 7월 상하이에 ‘국가동만유희(애니메이션만화게임)산업진흥기지’를 설립했고, 올해부터는 쓰촨성을 비롯해 중국 주요 지역 네 곳에 같은 기관을 세울 계획이다. 게다가 부처별로 유사기관을 만들고 있어 조만간 중국 내 문화콘텐츠산업 지원기관이 서른 군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도 지난해 10월에 ‘일본영상산업진흥기구’를 설립한 바 있고, 대만도 의회에 법이 통과되는 대로 진흥원을 벤치마킹한 문화콘텐츠산업 지원기관을 발족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정책과 아이디어가 해외로 알려져 좋은 본보기가 된다는 것은 일단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다. 오늘 우리가 집행하고 완성한 정책과 지원체계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짧지 않은 시간과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된 지식 산출물이다. 이런 것을 너무 쉽게 전파해준다면 결과적으로 경쟁국들의 ‘손 안 대고 코풀기’를 도와주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광고문구를 하나 빌리자면 ‘우리가 5년 걸려 만들어놓은 것을 경쟁국이 1년 만에 만들 수 있게 도와줘’ 각박한 경쟁환경을 자초할 수 있다. 문화콘텐츠진흥원도 그동안 이런 우려 때문에 외국 기관에 대한 정보공개 수준을 엄격하게 관리해왔다.

 물론 그렇다고 꽁꽁 숨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파할 것은 전파하고, 알릴 것은 알리되 궁극적으로 국익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정보공개의 시점과 수준을 조절하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공공과 민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국가 간 경쟁이 기업 간 경쟁만큼이나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책과 노하우도 소중한 국가 지식자원으로 관리돼야 한다.

 어쨌든 우리나라를 모델로 삼아 중국과 일본은 문화콘텐츠산업 지원체계를 이미 마련했고, 대만은 한창 마련중이다. 과거에는 문화콘텐츠 자체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면, 이제는 문화콘텐츠산업 지원체계로까지 전선이 확대된 셈이다. 따라서 문화콘텐츠산업에 대한 본격적인 경쟁은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꼭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문화콘텐츠가 일반 제조상품과 본질적으로 다른 문화상품의 하나이기 때문에 적자생존식의 무한경쟁이 아닌, 상호호혜를 원칙으로 한 상생의 경쟁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문화는 본질적으로 교류를 통해 상호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기관 간 경쟁 못지않게 협력 또한 중요하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문화콘텐츠 경쟁 속에서 우리의 발전을 꾀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서병문 문화콘텐츠진흥원장 bmsuh@koc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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