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서부 알룻바 시에서 5km 떨어진 다라아메. 인구가 100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지난해 12월 작은 학교가 세워졌다. 6살부터 13살까지 어린이 120명이 이곳에서 공부한다. 정규교사는 2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다. 학교 이름은 ‘가온 다라아메 스쿨’. 이 학교는 셋톱박스 전문업체인 가온미디어(http://www.kaonmedia.net) 임화섭 사장과 국제 구호 기구인 월드비전 구호팀장 한비야씨가 함께 세웠다. 전쟁중인 이라크에 한국의 중소기업이 학교를 세우기는 처음이다. 학교 이름에 굳이 ‘회사명’을 넣지 말라고 했지만 결국 학교와 이라크 교육 관계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가온’이란 이름을 넣고 말았다.
‘가온’은 ‘가운데’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이슬람에서는 ‘왕’이란 뜻도 있다. 그럭저럭 학교 이름은 괜찮은 셈이다. 건물 완공 때 임 사장은 학교에 가보지 못했다. 이라크는 아직 전쟁중이기 때문이었다.
가온미디어는 최근 코스닥에 등록한 셋톱박스 전문기업이다. 이 회사 임화섭 사장을 만난 건 지난 화요일. 그는 몸살 기운에 힘들어했다. 월요일 성남의 독거노인 집을 찾아 장판깔기와 도배질을 한 뒤라, 몸살이 크게 난 터였다. 매달 2회씩 휴일마다 그는 성남지역 독거노인과 소년 소녀 가장을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 월 2회지만 하루 만에 2∼3곳의 장판과 도배를 하는 큰 공사다.
“봉사라는 말이 싫습니다. 제가 더 배우는 게 많거든요. 뭘 배우냐고요? 희망을 배웁니다.” 몸이 피곤해 보였지만 그는 밝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벽지 바르고, 장판 깔면서 희망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의 형은 장애우다.
그가 이라크에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한 것은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버리면서부터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버리고 나니,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동지역에 각종 상품을 수출해 돈을 벌면서 정작 이슬람을 외면하는 우리나라가 그는 안타까웠다. 최근 이란 상무성의 국내 제품에 대한 신용장 개설 중지 사태가 나온 것도 결국 이슬람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일그러진 편견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이라크를 택한 것은 그만큼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고, 교육에 대한 투자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땅은 이라크 정부가 지원하고, 학교 건물을 지었을 뿐입니다. 학교 설립하는 데 우리돈으로 3억원 남짓 들었습니다. 초기 투자비보다는 향후 학교를 관리하고 교육기자재를 공급하는 데 비용이 더 들겠지요.” 교육만이 그들의 미래다. 이라크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우리와 비슷했다. 전쟁 속에서도 학교에 보내려는 부모의 마음은 우리와 너무 닮아 있었다. 그가 장애우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만들려다가, 교육문제에 관심을 돌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을 맡고 있는 한비야씨를 우연찮게 만난 뒤 중동과 아프리카 교육사업 참여를 결정했다. 결국 사람이 힘이었다.
그는 최근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와 지진참사가 벌어진 파키스탄, 인도에 학교를 세울 준비를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최근 불안한 정치 상황 때문에 다소 지연됐지만 파키스탄과 인도에서는 상당한 물밑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4분기 내에 현지 학교 기공식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한비야씨가 큰 도움이 됐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이슬람권에 셋톱박스 수출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기업의 이해가 적었습니다. 오래 기업을 운영하려면, 이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내년부터 회사 차원에서 봉사활동을 강화할 예정이다. 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은 ‘희망을 키우는 것’인 동시에 ‘회사를 키우는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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