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가들이 무엇으로 돈을 버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벤처기업인들의 모임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한 벤처 CEO가 느닷없이 내던진 말이다. 함께했던 다른 벤처경영자들도 처음엔 생뚱맞은 화두에 의아해 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CEO가 코스닥 상장기업의 경영인으로서 현금을 거머쥐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해법을 구하자 분위기는 금방 달라졌다.
대표적 1세대 벤처기업들의 잇따른 분식회계 파문 직후여서 그런지 화제는 자연스럽게 벤처 경영 문제로 옮겨갔다. 최근 벤처 스타들의 몰락 배경에 대한 분석도 하나씩 나왔다. 그러자 다른 벤처 경영자들도 자신이 겪고 있는 경영상 어려움에다 느낌까지 보태 넋두리를 쏟아냈다. 한마디로 현행 제도로는 벤처기업가들이 돈벌기 힘들고 기업을 꾸려 나가기도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처 CEO들이 진짜 말하고 싶어하는 핵심은 이보다도 창업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현행 코스닥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들이다. 최근 분식회계 파문을 일으킨 두 벤처기업의 사례에서 보듯 현행 제도에서는 벤처 창업자가 전 재산을 걸고 코스닥 상장에 성공해도 1∼2년 내에 현금자산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업규모가 커지면 벤처 창업자들이 현금 회수를 더 못하는 맹점도 있다고 한다. 창업자의 지분매각에 대한 시선이 따갑기 때문이다. 창업자의 경영능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코스닥 기업이지만 ‘오너CEO 주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창업CEO가 지분을 팔기라도 하면 회사에 큰 일이라도 생긴 양 주가가 순식간에 폭락하고 만다. 오너CEO가 주식 매각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것은 아예 백안시한다. 이러니 벤처 창업CEO가 편법을 동원하지 않고는 좀처럼 현금을 만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벤처기업인들이 코스닥에 상장하려는 목적이 무엇일까 하는 원초적 의문이 든다. 물론 기업의 안정적인 성장도모도 있을 것이고, 임직원들과 이해관계자들의 ‘부의 축적’ 또한 중요한 사유가 됨은 부정할 수 없다. 부를 창출하기 위해 벤처에 투신했고 그에 따른 가장 현실적인 기회가 코스닥 상장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씩 따져보자. 코스닥 상장을 통해 그간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하는 심리 이면에 현실적으로 따르는 문제가 많다. 단지 돈 문제만은 아니다. 새로운 인재의 채용을 위한 스톱옵션도 그중 하나다. 스톡옵션 행사가가 너무 높아 사실상 실효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최근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의 등장으로 달라지긴 했지만 기존의 우리사주는 퇴사하는 경우에만 팔 수 있는 제도적 한계점도 있다.
벤처 창업자라면 어렵게 창업해서 그럴듯한 기업체로 만들어 코스닥에 입성한만큼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코스닥기업의 창업CEO들이 돈 벌 욕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일부 코스닥 업의 머니게임을 막기 위해 마련한 엄격한 규제 제도로 인해 다른 많은 창업CEO가 발목 잡혀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기술을 먹고사는 벤처기업의 생명은 우수 인력 확보에 달려 있다. 스톡옵션제는 메리트가 없어졌고 퇴사하기 전에 팔 수 없는 우리사주제도 또한 우수 인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봐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불합리한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벤처 활성화도 한낮 구호에 그칠 수 있다.
모임이 끝나기 전 다른 벤처 CEO가 던진 한마디가 특히 인상적이다.
“벤처인들이 새로운 사업과 중장기 비전을 위해 기업을 팔거나 주식을 넘기기 어려워 문제가 발생해도 그대로 안고 가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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