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혈맥을 뚫는 일로 분주했다. 고속도로가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도시마다 땅을 파헤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도로 위로 자동차가 늘어나더니 신호등과 교통 표지판들이 설치되고, 교통체계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마련됐다. 지금의 신호체계나 교통기기들 보다는 훨씬 열악하지만 안전과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교통 인프라도 갖추게 됐다. 그런대로 교통정책이 차츰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초기 교통정책이 시작될 때 우스갯소리처럼 회자되던 이야기가 있었다. “면허증도 없는 것들이 교통정책을 세운다”는 것이었다. 불합리한 신호나 교통체계가 많은 것을 비꼬아 한 말이었지만 사실상 그 당시 많은 정책입안자가 탁상행정으로 거리의 구조를 논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 오히려 사고를 야기하고 체증현상이 생겨나는 어이없는 일도 발생하곤 했다.
지금은 사이버 도시에 도로가 건설되고 그 도로상의 많은 정보 움직임을 체계화하기 위한 IT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하게 전개되는 IT 기술과 급변하는 사이버 문화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IT 정책은 교통정책에 비해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IT산업은 국경 없는 경쟁 속에서 생존해야 하고, 개인정보보호 등의 문제는 문화적인 요소와 함께 다루어져야 하는데, IT 교육은 효율성을 따지다 보면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심지어 새롭게 개발되는 IT 기술의 내일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혼돈스러울 때도 있다. 제3세대 무선통신으로 IMT2000을 선택하고 막대한 투자를 기획했으나 이후 구축의 경제성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은 기술 변화 예측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만일 교통정책을 면허증 정도는 갖고 있고 운전 경험이 많은 사람이 수립해야 한다면, IT 정책도 적어도 새로운 IT 기기를 접해 보고 장단점을 이해하는 사람이 정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장 중심의 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기본조차 허용되지 않는 환경에서 정책이 수립돼 안타깝다.
위성 DMB 정책을 수립하는 이에게 DMB폰이 제공되지 않으며, 텔레매틱스 정책 입안자의 차에서 텔레매틱스 기기를 발견할 수 없다. 기업인과 연구진 그리고 정책입안 실무자가 함께 앉아 토론하며 논쟁하는 모습은 공식적인 회의에서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다. IT 구현의 현장에서 정책 수립의 힌트를 찾아다니는 정책입안자의 모습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이제라도 더 밝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책 수립 환경이 변하기를 기대한다. 정부는 과감하게 첨단기기들을 정책을 수립하는 이들에게 제공하고, 현장을 누비는 기회를 대폭 확대하기를 바란다. 홈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실무자의 생활환경이 홈 네트워크의 시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문서에서 사실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정책 추진의 실제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다.
현장 정책 수립의 궁극적인 목표는 산·학·관·연이 함께 성공하는 윈윈 전략이다. 만일 기술 개발과 정책 수립, 기업 경영이 따로따로 이루어진다면 IT의 미래는 절름발이가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허물없이 산·학·관·연이 어울려 IT를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미래의 목표를 함께 설정하는 현장 정책 수립이 현실화되기를 기대한다.
현장 정책은 IT 기술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현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라는 명성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후손들에게 알게 해 줄 것이다.
◆정태명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tmchung@ece.s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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